한국일보

선 물

2011-02-14 (월)
크게 작게

▶ 선교하는 삶

출장을 왔던 친구 하나가 귀국선물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와이프가 골프용품점에 가서 몇 번이나 만져보기만 하던 클럽이 있었지. 마침 생일이 되었기에 그 채를 사다 주었더니 자기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사면 어떡하냐고 벌컥 화를 내더라구… 내 참!” 여자들은 물건을 집었다 놨다 찝적거리는 과정에 무슨 즐거운 호르몬이라도 나오는 모양이라고 우리는 나름대로 결론을 맺었고 다시는 선물 같은 거 사다 주나 봐라! 하고 그는 내내 서운해 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지나고 설이 지났다. 그래도 선물을 주고받아야 하는 공식적인 기간이 아주 지나간 건 아니다. 밸런타인스 데이가 있고 화이트 데이가 다가오고 숨 좀 돌릴까 하면 다시 어머니날에 아버지날… 그 사이사이 끼어있는 누군가의 생일과 결혼과 졸업과 개업과… 선물은 즐거운 일인가, 스트레스인가?

정성껏 포장지에 싸서 살며시 건네면 무엇이 들었을까 두근두근 선물을 풀어보던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냐? 그래, 네 맘대로 골라봐라! 물질이 넘치는 젊은 세대들은 기프트 카드로 자기 좋은 것을 고르겠다 한다. 그것도 자기가 선호하는 상점이 아니면 고마워하기는커녕 에게게, 하필이면? 하고 심드렁이다. 선물로 받은 기프트 카드를 돈이나 다른 상점 카드로 바꿔주는 사이트가 그래서 인기다.


불우 어린이들을 돕는 국제재단을 통하여 선물을 하려고 위시리스트를 받아 읽어보니 지역을 불문하고 대부분 전자제품이나 게임기, 컴퓨터용품들뿐이다.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서 받은 책받침이나 연필 한 자루가 소중해서 아끼고 못쓰던 때를 얘기하면 요새 아이들은 아이고… 또 설교가 시작되려나? 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중학교에 입학했다고 처음 손목시계를 선물 받았을 때 나는 너무 좋아서 머리맡에 시계를 두고 잤다. 이제 시계는 더 이상 선물 축에도 못 낀다. 아이들에게는 문구류나 옷가지도 금지품목이다. 생필품은 선물 아이템이 될 수 없다고 우긴다.

내가 아끼는 선물은 십여년 전 멕시코 교도소에서 받아온 커다란 배 모형이다. 수감자 형제 하나가 아주 얇은 이쑤시개를 3,000개 가량 모아서 지은 것이다. 조그마한 창문이나 문짝들은 열고 들어갈 것만 같이 정교하게 생겼다. 그는 치과 치료를 해준 나에게 수년 간의 정성이 들어간 그 모형 배를 선뜻 선물로 주었다.

또 하나는 털실로 짠 목도리이다.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던 여자 환자 한 분이 10년 넘게 병상에 누워 지내다가 몇 년 전부터 놀랍게도 손 끝에 조금씩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물리치료사가 손을 계속 놀려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이거… 추울 때 두르세요!” 그녀가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움직여 건네준 선물 백 안에는 1년이 걸려 완성했다는 털목도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려면 천천히 백을 세어야 한다는데….

‘은혜는 하늘에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더니 믿지 않는 친구가 말했다. “아니, 난 복잡하게 은혜 같은 선물은 필요 없고, 그냥 확! 돈벼락이나 내려달라고 너네 하나님한테 말 좀 해다오!”


김 범 수(치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