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의 선물

2011-02-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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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이야기

‘전설의 고향’에 가끔 행차할 듯싶은 인상 좋은 백발 할아버지, 눈을 치켜뜨고 꼬치꼬치 양심의 죄를 캐묻는 우주경찰관, 매사가 자기 맘대로인 얄미운 폭군, 비인격적이고도 막연한 어떤 힘.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하나님 이미지들이다. 육친에게 받은 상처로 일그러진 아버지 상이 하나님께 투영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는 그대로의 하나님상이 아니면 다 거짓이다.

하나님은 자비가 무한하신 분이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또 하나님은 당신의 진짜 아버지시다. 진화론은 ‘거짓의 아비’(요 8:44)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사 44:24). 그러나 아담이 넘어지면서 그의 허리에 있던 모든 인류도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하나님은 지금도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를 향해 용서와 회복의 두 팔을 넓게 벌리고 계신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이 초청은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다. 선물은 거저 받아야 선물이다.


값비싼 선물을 마련하기까지 엄청난 대가가 지불되었어도 받는 사람은 공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9).

안타깝게도 인간은 인과응보 사상에 길들여져 있다. 죄인을 은혜로 거저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왠지 편치 않고 어색하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무언가 잘못된 행동부터 고쳐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선물에 대해 내가 할 일은 받는 것뿐이다. 선물에 돈이나 모종의 대가를 지불하려는 것은 선물을 모독하는 행위다.

구원은 나 아닌 제3자의 도움으로 구출된다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발견된다.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 52:3). 은혜가 구원의 원천이라면 믿음은 구원의 통로다. 예수님을 통해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은 그 효력을 믿는 것이 곧 받는 것이다. 선물은 의심받지 않을 때 진짜 선물이 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하나님은 이제 믿는 자를 보실 때 예수님처럼 100% 깨끗하다고 보신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

인류의 ‘집단가출’ 이후에도 하나님은 부성애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행색을 멀리서부터 알아차렸다. 매일 집 문 밖에 나가 아들이 돌아오길 줄곧 기다렸다는 증거다.

사랑 없는 공의는 공허하고 공의 없는 사랑은 맹목이다. 십자가는 하나님 이미지에 대한 온갖 오해를 불식시킨다. 그 위대한 선물의 비밀을 최후심판 날에 가서야 뒤늦게 깨우칠 사람은 불행하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10).


안 환 균 <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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