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끗한 행복

2011-01-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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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조선조 후기 선비 중에 장혼(호는 이이엄)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중인 신분이었지만 조선조의 학술과 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입니다. 그의 문집 ‘이이엄집’에 ‘평생지’(평생의 소원)라는 글이 있고 그 후기에 여덟 가지 청복(깨끗한 행복)이라는 첨언이 있습니다. 그가 정리한 청복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태평시대에 태어난 것, 둘째는 한양에 사는 것, 셋째는 다행히 선비 축에 끼었다는 것, 넷째는 문자를 대충 이해 한다는 것, 다섯째는 산수가 아름다운 한 곳에 거주한다는 것, 여섯째는 꽃과 나무를 기르며 산다는 것, 일곱째는 마음에 맞는 벗을 사귈 수 있다는 것, 여덟째는 좋은 책을 소장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가 행복으로 본 것은 오늘 자본주의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재물이 아니었고, 현대인들이 요란하게 떠드는 사랑도 아니었으며, 명예와 향락 추구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청복은 우리에게 삶의 여유와 멋과 향기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청복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그가 왜 이 행복조항을 정리해 마음에 새기려 했던가가 더 중요합니다. 누군가 깨끗한 행복을 논하고 있다는 것은, 그 시대에 그런 청복이 그다지 추구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장혼이 살던 조선 후기는 결코 청복이 주목 받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심화된 당쟁과 관리들의 토색질로 경제가 황폐해지고 토지를 잃는 농민들이 유리방황하는 국운의 쇠퇴기였습니다. 그런 때 장혼은 문학을 통해 깨끗한 행복을 의식화함으로써 허물어지는 선비사회의 고고함을 지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배계층의 부패를 보면서 언론을 알고, 학문을 알고, 문학을 알았던 장혼이 혼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깨끗한 행복을 역설하는 모습은 습지의 수선화처럼 청초해 보입니다. 그의 노력은 지성의 몸부림이었고, 정신적 투쟁이었고, 자기단련의 채찍질이었습니다. 그의 청복이 시대를 건너 오늘 우리의 가슴에 큰 울림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떠나 온 고국의 상황도 조선 후기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도층이 명예와 재물을 누릴 만큼 누리는데도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는가 하면 금방 부정이 드러나서 수사대상이 되어 망신을 당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배계층의 도덕적인 타락은 자신의 추락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 실망과 비애감을 주어 그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고 국가의 근간까지 흔듭니다. 그 부정한 고위 인사들이 장혼처럼 청복의 멋을 알았다면, 패가망신은 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의 매듭을 만들면서 그 시간의 마디마디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삶을 추구해 왔습니다. 새해는 우리에게 부활을 요구합니다. 부활이란 헝클어진 삶을 정리하고 정돈된 삶을 살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패를 청산하고 부활하는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자세이고, 깨끗하고 복된 출발이라 하겠습니다.

정초에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혹시 아주 조금이라도 조선의 선비정신이 내 피 속에 깃들기를 소원해 봅니다. 비록 만리타국에 와서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청복을 추구하던 조선 선비의 그 꼿꼿한 기개가 내 안에 있다면 그 기개로 새해에는 내 존재에 청초한 멋을 더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어찌 필자 한 사람만의 소원이겠습니까?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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