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경제불황과 복고풍

2010-07-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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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밝히는데, 과연 왜 한국 여성들은 90년대 후반 TV시리즈로 시작된 이 ‘섹스 앤드 시티’ 열광에 빠졌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뉴욕에 가고싶고, 살고싶은 여성들이 그리는 행복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고 사랑에 대한 환타지를 이뤄주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불황과 복고풍
민병임(논설위원)

몇달새 본 미국 영화로 ‘줄리엣에게 보내는 편지’, ‘섹스앤드시티2’, 뮤지컬로는 ‘저지보이스’, 한국 영화는 2009년도에 나온 ‘박쥐’, ‘여배우들’ 등이 있다.

회자되는 영화나 뮤지컬, 노래 등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 느낌, 좋아하는 스타일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것을 추구하는 지도 알 수 있다. ‘줄리엣에게 보내는 편지’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인 이태리 베로나에서 1957년 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냈던 파파할머니가 ‘애인 찾아 삼만리’를 한 끝에 마침내 그 꿈을 이루는 고색창연한 영화다. 그런데 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랑에 미국의 20대 젊은 여성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보고 있었다.


또 ‘섹스 앤드 시티2’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여성들이 나와 패션과 섹스를 지금의 형편이 어렵고 도망가고 싶다면 그래도 과거가 좋았다는 판단이 나오게 되고 향수에 젖게 되는 것이다.그러면 한국 영화로 보는 한국인들의 생각은 어떤가?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뱀파이어 신부가 친구 아내를 탐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치명적 사건을 다루었고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패션지 특집화보를 위해 모인 6명의 한국 최고 배우들이 나와 연기인지, 다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대로 그들의 속내를 조금 털어놓았고 최근 뉴욕에 이어 뉴저지에서 개봉 중인 ‘방자전’은 고전 춘향전을 거꾸로 한 유쾌 발칙한 사극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7급 공무원’ 같은 복고풍 영화도 있지만 화제작이었던 위의 작품들을 보면 한국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미국보다는 경제사정이 나은 것이 아닌 가 싶다. 별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기발하고 재미난 것을 탐미하는 자는 현재 처지에 별로 만족 못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상상력, 창조력은 발전하겠지만 이럴 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모든 것의 순리와 원칙과 도리의 근원은 ‘과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는 아직 침체 중이고 복고풍으로 가는 것같지만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경제가 되살아난 과거를 발판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3D영화 ‘아바타’도 있는데 내가 본 영화나 뮤지컬이 모두 복고풍이라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국이나 미국이나 빨리 경제가 좋아져야 할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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