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젓가락 문화와 포크 문화

2010-07-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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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이번 월드컵은 한국 전체를 빨갛게 물들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거리에 나와 ‘대-한 민국’을 외치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당파도 출신지역도, 학벌도, 빈부의 차이도 극복한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분열과 대립이라는 오명을 가진 우리 조국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런 감동 속에서 월드컵이 1년에 한 번 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애국심이니 민족정신이니 하는 틀에 박힌 말로 그 순진한 마음들을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위도 아니고 거사(巨事)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축제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신이 나고, 함께 외친 것이다.

세계 인종시장 같은 미국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국민 대단합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미국은 처음부터 이민의 나라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하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밖에서 들어온 이민들이다. 미국의 뿌리와 특색은 복합인종, 복합문화에 있다. 존 스타인벡의 말대로 미국인, 미국문화란 영원히 형성되는 성격을 가졌고 어떤 고정된 미국인 미국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을 ‘영원한 혁명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도 부단히 고치고 계속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고 새 전선(New frontier)을 찾아 쉴 새 없이 전진하기 때문이다. 새 땅에 정착한 이민들은 제각기 자기의 것을 내놓고 하나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만들기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평화를 뜻하고 조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피차가 녹아 없어져 융합됨을 뜻하지 않는다. 각자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피차의 부족을 보충해 주어 더 높은 차원의 하모니(화음)를 이루는 것이다. 불화는 성격의 차이보다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은 서로 얼굴이 다르듯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특색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기와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다른 점을 음미하고 다른 소리끼리 묶여서 하모니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바른 인생관이다.

인종, 문화, 종교, 언어, 전통이 달라도 대화합을 이룩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 미국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 차이점을 거부하지 않고 활용하는 아량, 다른 색깔들도 조화에 따라 아름다운 모자이크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해, 채소들이 제각각 맛이 다르지만 섞여서 샐러드가 되어 더 깊은 차원의 맛을 창출할 수 있다는 차원 높은 생각이 대화합을 이룩할 수 있는 기본 정신이다. 한국인의 문화를 ‘젓가락 문화’로, 서양인의 문화를 ‘포크 문화’로 비유하고 싶다. 포크(fork)는 찔러서 나르는 매우 공격적인 도구인데 비하여 젓가락은 두 가락의 조화와 협력으로 차분하게 집어서 나르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젓가락의 두 가락은 춤을 추듯 서로 어울리면서 음식물을 효율적으로 집어 나른다. 젓가락의 리듬은 극히 자연스럽고 예술적이다. 한국식당에서 어떤 아이가 젓가락 둘을 손아귀에 쥐고 스파게티처럼 국수를 둘둘 말아 입으로 나르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흉하고, 젓가락을 포크로 대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월드컵에서 수준 높은 경기들을 오랜만에 보았다. 축구는 철저히 협력의 게임이다. 축구의 승패는 개인기가 뛰어난 몇 선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열 한 명이 하나가 되는 팀워크에 달려있다. 예수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저희가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겨우 열 두 명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기도이다. 외모와 피부와 개성이 달라도 하나가 되려는 운동이 사랑이다. ‘다양(多樣) 속의 통일’이 미국이 대통합을 이룬 비결이며 이곳에 이민 온 우리들 한국계 이민자들이 배울 점이다. 천국은 우수한 독창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소리에 맞추는 합창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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