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독자들로부터 온 전화

2010-07-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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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난주 ‘빈들의 교회’라는 제하의 칼럼이 나가자 여러명의 한인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재 우리 한인교회가 너무나 많이 변질돼 있다면서 교계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인교회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어떤 이는 아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분위기였고, 어떤 이는 탄식도 모자라 분개감까지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반응에 대해서 한인교계와 목회자들은 좀 관심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한인사회 절대다수가 교회에 적을 두고 있어 이들을 인도하는 교회와 목회자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성장율은 세계 최고라 할 만큼 급팽창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회가 오히려 더 혼탁하고 문란해져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이 성폭행, 자살, 살해사건 등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목사가 아내를 목졸라 죽여서 유기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가해목사는 사건발생 이전까지 버젓이 목회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교계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엽기적인 사건이다.
한인교계의 방향은 주로 자기 위주, 다시 말하면 내 가족 잘되고 내 사업 형통하는 그야말로 무속 신앙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내가 좀 희생되더라도 다른 사람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소위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신앙이 결여돼 있다. 나만을, 자교회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현재 한인교계의 현실은 영적인 면에 너무 치중돼 있기 때문에 교회가 많이 부흥하고 성전이 크게 지어지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성공한 목회로 치부한다. 때문에 내 교회에, 내 이웃에, 우리 사회에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어도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진정한 목회성공이란 무엇인가.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사실상의 성공이 아닌가. 이것이 이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진정한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목회자라면 자신은 잘 못먹더라도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면서 어려운 사람과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죽었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성공한 목회요, 목회자가 아닐까.

예수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와 핍박받는 자,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의 뒤를 따른다고 하는 소위 이 시대 목자들은 어떠한가. 너무 배부르고 너무 윤택해서 과연 그들이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예수는 “공중의 새도 둥지는 있고 여우도 굴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의 진정한 무소유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 식으로 한다면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올바른 목회자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의 이름을 빌어 예수의 행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목자들이 대다수다.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따르지 않는 목자라면 그것은 이미 올바른 목자라고 할 수 없다. 매년 줄줄이 양산되는 그 수많은 한인목사들은 무엇을 꿈꾸며 목자가 되려는 것일까. 어떤 청년이 예수앞에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예수를 따라갈 수 있는가?고 물었다. 예수는 네가 가진 그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 주라 그리고 나서 따르라고 말했다. 그 청년은 아까워서 제물을 못 버려 결국 예수를 따르지 못했다. 뭐든지 버리지 않고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예수를 따를 수가 없다.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면서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목회 성공이라 함은 처절하게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다 이루었다”고 한 예수의 행적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애쓸 때 가능한 것이다. 예수와 같이 순교하는 정신으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올바른 목회자의 길이다. 물질주의에 물들고 ‘박사’라는 불필요한 명예 따위를 좇는 것은 이미 목회와는 거리가 멀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진정한 목회자가 그리운 건 전화를 걸어온 독자들만이 아닐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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