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DMZ 사진전

2010-07-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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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지구 위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DMZ 비무장지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실제보다 더 높고 견고하다. 지난 57년간 인간의 발길이 끊겼던 그 지대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유엔내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카메라에 잡힌 대상들은 하나같이 험한 옛일을 말끔히 씻고, 제각기 서정시를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사진작가의 작업 철학이 평화와 생명을 찾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맡은 사진 작가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번 비무장지대 사진 작업 중 사고가 발생하여 죽거나 부상을 당해도 일절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겠습니다. 1997년 11.7 사진가 최병관’ 여기에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난 후 도장을 찍었다고 본인이 기록하고 있다. 이런 그의 마음이 작품마다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그는 작품 만들기에 목숨을 바칠 값어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작업하는 동안 행복하였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사진들을 감상하는 동안 작가와 함께 오래 묵은 비경을 걸어가는 듯 착각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녹슨 전투모자 철모, 그것도 총알 구멍이 수없이 뚫린 철모, 그 조그만 구멍 사이로 들꽃이 뾰족이 고개를 들고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마음에 찡하는 감동을 주었다. 그 철모의 임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들꽃은 그의 넋인가. 이렇게 가냘픈 들꽃의 놀라운 생명력... 바로 이 사진이 전시회의 정신이며, 상징이라고 느꼈다.


예술 분야가 서로 넘나들어 경계가 희미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은 ‘한국의 비무장지대, 평화와 생명을 찾아서의 사진. 글 최병관’ 의 두툼한 책을 감상한 느낌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사진과 고운 글이 서로 어울러서 예술의 차원을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작품의 아름다움이 바로 작가의 고아한 인품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사진과 그림의 아름다움에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실제의 물체를 카메라에 담았고, 다른 하나는 실제의 물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차적인 답이 될 것이다. 사진 같은 그림이나, 그림 같은 사진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이 사진전에서 미술적이고 시적인 작가의 섬세한 감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떠나간다. 살벌한 옛 싸움터, 그것도 동족끼리의 슬픈 싸움터는 시간에 흘러갔고, 거기에 새 생명이 싹텄다. 폐허는 생명의 땅으로 바뀌었고, 불에 탄 검은 들판은 신비스러운 초록 벌판이 되었다. 거기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하고, 천연 기념물인 산양, 두루미를 비롯한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낙서가 있다. 경의선 찻길이 새롭게 건설된 후 철길 받침 목에 동판을 붙여 저마다 소망을 써 놓은 것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나는 가고 싶다!! 부모님의 고향, 평양과 개성으로!!’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목소리며, 우리의 소원이다. 오랜 정원으로 바뀐 DMZ는 평화를 외치면서, 통일을 부르짖고 있다.

6.25를 체험한 사람들은 한국내 인구의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처참한 전쟁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값진 평화에 감사하는 마음이 간절할까. 6.25는 우리 땅에서 벌어졌던 형제간의 전쟁이었고, 지금의 평화는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이 가져온 귀한 선물이다. 6.25 발발 후 DMZ가 천연 기념물과 멸종 위기 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거듭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망가진 것은 고치고, 어두운 것은 밝게 하고, 잃은 것은 잊어버리
고, 흩어진 것은 모으고, 슬픔은 평화로 바꾸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새 생명을 낳게 하는 길이다. 마치 옛 싸움터에 새 생명이 싹트고, 평화의 햇볕이 따스한 것처럼. DMZ 사진전으로 귀한 것을 깨닫게 한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통일은 DMZ가 없어지는 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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