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퍼슨의 바이블

2010-07-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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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3대 대통령이라는 유명세보다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원문-자잘한 폭동이 이따금씩 일어난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20년에 한번쯤은 제발 그런 폭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애국자와 반란군의 피가 자유의 나무에 쌓인 때를 가끔 벗겨줄 필요가 있다)”는 말로 더 유명하다.
토마스 제퍼슨은 삼대 미국건국의 아버지(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작가이기도 한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하였고 선언문에 ‘천지만물의 하나님‘ 등 신의 은총을 갈구하는 문구로 일관했다. 그랬던 그가 국가운영의 기초가 되는 헌제정회의(의장-조지 워싱턴. 1787년 5월)의원으로 활약하면서 헌법에 종교(기독교)의 개입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회의를 기도로 시작하자는 제의를 표결로 부결시켰고 목사를 입석시키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발의가 투표로 거부되었다. 미합중국헌법이 제정되기까지, 글자 하나 수정하는데도 반드시 표결에 부쳐 무려 600회라는 투표를 거쳐 완성시켰다. 미합중국의 위대한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 보호하사”가 아니라 차돌 같은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600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 무렵 저 유명한 ‘제퍼슨 바이블’이 출간되었다. 이 바이블의 특이한 점은 기존의 바이블 가운데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기적에 관한 구절은 모두 삭제하고 도덕과 윤리적 가르침만을 강조하여 새롭게 편집한 복음서를 발간하였다. 이를 미국역사에서는 ‘제퍼슨 바이블’이라 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이 책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을 더듬어 본다.


중세유럽의 암흑시대가 과학과 이성이 교회와 국왕을 압도하는 계몽사상으로 뒤덮였고 그 여진은 신생 미대륙에도 강하게 몰아붙였다. 계몽사상이야말로 미국의 장래라고 건국의 아버지들은 굳게 믿었다. 이 광대한 미대륙은 땅끝까지 정복되어야 하고 인디언은 죽어주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부로 서부로 질주하는 투철한 개척정신이 요구되었다. 당시 미 대륙의 기독교는 칼빈주의적 신비와 염세주의로 기독교 특유의 역동적 기력이 상실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개척정신을 허약하게 만드는 적으로 토마스 제퍼슨의 눈에 비쳤을 것이고, 이런 동기에서 ‘제퍼슨 바이블’이 출간되었다고 본다.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는 ‘이신론자(이성에 호소하는 합리적 신관)’이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샤머니즘적 기복신앙으로 빠져든지 오래다. 예배당에 들어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제물을 곳간이 아닌 하늘나라(교회)에 쌓기만 하면 만병이 통치되고, 부자 되고, 하버드 대학 간다고 인간을 기복의 늪에 몰아놓고 있다. 그 시간에 도서관에 있어야 할 청소년이 길거리에서 교회전단을 뿌리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제2의 ‘제퍼슨 바이블’이 나오기 전에 한국기독교는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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