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이제 뭘 하지?”

2010-07-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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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뉴욕 한인을 비롯 전세계 한국인의 핏줄을 뜨겁게 달구었던 남아공 월드컵 한국팀 시합이 끝나고 폭염이 몰려왔다. 8강까지 갔다면 응원 열기에 들떠 이 더위가 더위가 아닐텐데 말이다. 오는 주말은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휴지만 경기 침체가 좀처럼 풀리지 않다보니 미국 성인의 절반이상이 휴가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퓨 리서치 센터가 5월 11일부터 31일까지 미국 성인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월스트릿 저널이 30일 인용보도 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5%가 휴가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타인에게서 돈을 빌렸다가 49%, 술과 담배 소비를 줄였다가 30%, 집세나 모기지 내는 게 어렵다가 20%, 카드빚과 각종 공과금 내기가 어렵다가 15%가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불경기 속에서도 한인들은 별로 돈 들이지 않고 알뜰하게, 나름대로 세상사는 여유를 갖는 개인이나 동호인 모임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내 주위에는 멀리 케이프 코드로 가서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이 있다. 오징어, 광어, 옥돔을 잡아와서는 그날로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그 덕분에 한밤중이라도 집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오면 졸리는 눈 비비며 달려가서 그 자리에서 회를 떠주는 생선을 아이스 박스에 받아서 쫄깃쫄깃 싱싱한 회를 맛보기도 한다.그림을 배우는 동호인 모임도 있다. 대학시절 미대를 나왔으나 오랫동안 아이 키우고 살림 하느라 잊어버렸던 사람들은 뒤늦게 그 소질을 개발하기도 한다. 같은 회원끼리 ‘화백님’이라 부르며 ‘자뻑’에 취해도 즐겁기만 하다.


은퇴 후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하여 전문가 수준에 든 사람,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여 새로 창단된 합창단에 들어가 옛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 찬송가를 직접 쳐보고 싶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 주말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가는 사람, 그외 탁구, 테니스, 자전거, 승마 같은 스포츠뿐 아니라 영화배우 최민수처럼 붉은 두건 머리에 두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라이더스 클럽 등 많은 단체들이 최근들어 부쩍 활기를 띄고 있다.
본인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싫다면 감성을 키우고 교양을 쌓는 문화강좌도 있다. 뮤지엄 순례, 작가 스튜디오 탐방, 미술품 경매, 모마 명화 감상 특강, 다음 주에 있을 사진특강까지 본보가 후원하는 문화행사는 연일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팍팍한 이민생활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인생의 맛을 같이 향유하는 일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사람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는 않는다. 모든 직업이 100퍼센트 다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는 것이다.
세탁업을 하는 사람은 노래가 취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정용 노래방 기계인들 어떤가. 퇴근 후, 주말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노래 경연대회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삶을 즐길 수도 있다.축구가 끝났다고 허탈감에 젖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2년후의 올림픽, 4년후의 월드컵만 기다리지 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먹고 사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하니까 계속 하고 퇴근 후나 주말에 어렸을 적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 살아생전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자.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저녁 먹고 티 브이 보다가 소파에서 잠들면 배만 나온다. 벌떡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든지, 그림 도구를 챙기든지, 악보를 챙기든지, 무언가를 하자.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만사가 즐거워 질 것이다.“이제 뭘 하지?”하고 미적거리고 “이 나이에 무슨?”하고 포기하면 평생 못하고 만다. 인생은 별로 길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 그리고 세상사는 참맛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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