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빈들의 교회’

2010-06-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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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헬렌 켈러, 플로랜스 나이팅게일,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두고 두고 추앙을 받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평생동안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헌신은 비록 한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어둠과 절망에서 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해내 힘과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성경에서 예수가 행한 ‘오병이어의 기적’ 역시 한 사람의 남을 더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군중들을 위해 한 소년이 내놓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일 그 소년이 그 떡과 물고기를 자신만 생각해서 내놓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있던 그 많은 군중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기적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밝아지고 희망이 있는 곳으로 변하려면 이와같이 누군가의 희생적인 생각이나 행동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밝아지는 역사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지난 주일, 월드컵 축구경기로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을 때 롱아일랜드 한 조그마한 주택에서는 아주 의미있고 특별한 예배모임이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빈들의 교회’ 아는 분의 귀띰으로 찾아간 곳은 약간 초라해 보이는 이 집의 지하실.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삶에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을 지닌 한인 몇 명이었다. 이들에게 이 빈들의 교회는 영혼과 육체의 고달픔을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교회명의 ‘빈들’이라는 의미
는 예수가 핍박받으면서 성전도 없이 떠돌며 설교하던 당시 모습으로 상징되는 광야의 뜻이 담긴 것이라고 한다.


이 빈들의 교회는 바로 병들고 가난하거나 아니면 세상에서 소외되고 핍박당하고 하는 사람들의 영혼에 위안을 주고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이 교회의 목회자는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아픔을 통해서 평생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참다운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결심과 각오로 이날 예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모여지는 헌금은 앞으로 계속해서 그날로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바로 돌려질 것이라고 한다. 그는 평소 시간이 날 때면 언제나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나 주위를 살피곤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날 모인 한인들도 다 그의 평소 관심에 따라 접하게 된 사람들이다. 예배가 끝난 후 약간 초라해 보이는 뒷뜰에서 벌어진 바비큐 파티는 모인 이들에게 베풀기 위해 사랑으로 준비된 아주 성대한 자리였다. 풍성한 메뉴로 마련된 친교시간은 온가족이 정성과 사랑으로 땀흘려 준비한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인 자리였다. 이 목회자의 부인, 아들, 딸도 보면 예사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땅방울이 연신 흘러내리는 90도가 넘는 한 여름 폭염속의 화덕에서 음식을 연신 구워내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싫은 내색을 하는 가족이 없어 보였다.

모두가 즐거움과 기쁨으로 이들을 따뜻하고 정성스레 대접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은 바로 모두가 주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을 도우려면 많은 힘이 필요할 텐데요, 어떻게 하시려고...”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아무 걱정이 없어요.” 걱정스레 묻는 내게 도리어 아주 편안하고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한 사람의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이 계속될 경우 지금은 비록 적은 숫자지만 분명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준 여러 위인들의 행적처럼 앞으로 더 많은 한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 다락방에서 기도로 감옥에 있는 베드로를 구해내고 거리의 소년이 내놓아서 이룬 오병이어 같은 기적이 그의 지하실에서도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빈들의 교회는 분명 물질위주로 가는 이 시대 많은 한인교회에 본이 되는 맑고 깨끗한 샘터같은 곳이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 심리적으로 힘든 한인들에게 한가닥 희망이요, 밝은 빛이요, 영혼을 쉴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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