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전쟁과 ‘순교자’

2010-06-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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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김은국의 데뷰작 ‘순교자’(Martyred)는 당시 현지의 반응이 뜨거웠다. 1969년에는 한국인 작가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순교자는 1인칭 소설로서 대학에서 강사였던 이 대위가 화자이다. 이 대위는 유엔군의 북진과 함께 북한의 수도 평양으로 본부를 옮기고, 육군파견대 정보국장인 장 대령에게서 ‘실종된 목사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은 데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화자이며 주인공인 이 대위, 장 대령, 고 군목, 박 대위 등 네 사람이 이 소설의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다. 고 군목은 장 대령의 친구, 박 대위는 이 대위의 친구로서 이들은 모두 순교자를 위한 대대적인 합동추도예배의 준비위원들이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하이라이트는 합동추도예배가 거행되는 장면이겠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목사들을 심문했던 정 소좌가 포로로 잡혀 끌려와서 터트린 고백 장면과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던 신목사가 자기교회에서 드린 특별 예배에서 신자들에게 호소하는 설교 장면이다.
이 장면의 내용들을 다시 요약해 보면, 포로로 잡혀온 정 소좌의 증언에서 열 두명의 목사들은 자기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며, 배교하고, 개종을 맹세하고, 서로를 탓하다가 개같이 죽어갔지만, 신목사 만은 끝까지 지조를 지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고, 신목사는 자기 교회에서 드린 예배에서 분위기 살벌한 가운데서 단상에 올라 외쳤다. 자기는 예수를 부인해서 배교했고 죽은 12명의 목사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서로를 격려하다가, 마침내는 승리의 확신 속에서 순교했다고 힘있게 증언한 것이다.


상상을 불허하는 정 소좌의 고백과 순교한 12명의 목사들을 축복하는 신목사의 설교는 너무 이율배반적이어서 우리들을 마음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면서도 끝내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어 여전히 신 목사는 ‘배교자’의 딱지를 떼지 못한 채 ‘합동추도예배’가 어김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착잡했던지 모른다. 어쩌면 순교자란 신 목사와 같이 배교한 12명의 동료목사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죄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6.25 한국전쟁 60주년에 즈음하여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배경으로 리얼하게 펼쳐진 순교자를 읽으면서 전쟁 당시 교회와 목사들의 수난, 인간 영혼의 갈등, 또한 전쟁과 죽음 앞에서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았다.그리고 순교, 배교, 함락, 수복, 철수, 퇴각 같은 단어로 점철된 전쟁이라는 것은 이 땅에 아니, 세계 어디에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외치고 싶다. 하루 속히 조국 땅에 통일의 날이 오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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