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름휴가 꼭 가세요

2010-06-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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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지금 뉴저지 주는 학교 교사들의 조기 은퇴 바람으로 들끓고 있다. 크리스티 지사의 예산 삭감안 중에 교사의 은퇴 수당 삭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의 안 대로라면 현행 은퇴 수당보다 매달 300달러씩을 덜 받게 되므로 차라리 지금 은퇴하여 현행법에 준한 금액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이미 금년도에 은퇴하겠다고 청원서를 낸 교원이 6,500명을 돌파하였으며 이 수는 작년도 은퇴 교사의 배에 해당한다.

미국 목사의 경우 법적 정년은 70세지만 70세까지 일하는 목사는 거의 없고 대개 65세 정도에 은퇴한다. 이것은 사명감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태도의 문제이다. 돈보다도 조직사회에서 받는 프레셔(정신적 중압감)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관의 차이는 여름휴가에서도 나타난다. 휴가는 기분 전환의 의미가 아니라 1보 후퇴, 2보 전진의 의미를 가진다. 뉴욕의 포트 오솔리티나 메트로폴리턴 생명보험이 같은 내용을 보
고하고 있다. 즉 휴가를 충분히 사용하는 사원들이 훨씬 능률적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볼티모어의 실업가 존 사이즈모어 씨는 회사원의 능률성을 비교 연구한 결과 휴가를 돈으로 환불받거나 쉴 새 없이 일하는 소위 일 중독의 사원은 달갑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사원들의 생산성은 저조하고 병가를 많이 받으며 퇴사 율이 높기 때문에 신규 사원 훈련비용을 감안하면 회사의 손실이라는 것이다. 하워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 맥시 몰츠비 박사는 휴가를 단축하거나, 직장의 일을 집에 까지 들고 가거나, 휴가 중에도 직장에 전화 거는 사람이나, 식사 중에도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다. 그런 자들에게 심장마비가 많고 위장병, 각종 성인병과 정신질환이 많다는 것이다.

신학자 와이트헤드 박사는 종교를 가리켜 “인간이 조용히 물러앉아서 깨닫는 진리” 라고 말하였다. 행동이 필요하지만 그 행동에 스피드가 붙고 효율적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동안 물러앉았을 때에 비축되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사람은 쉬는 시간에 성장하도록 만들었을 거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정신적 성숙이나 남길만한 업적들은 바쁘게 뛰어다닐 때가 아니고 휴식과 독존(獨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흐의 웅장한 오르간 음악들은 그의 손이 오선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가족들이 잠든 밤중에 혼자서 숲속을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바흐를 보고 고독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였다. 고독(loneliness)과 독존(solitude)은 다르다. 바흐의 음악들은 별을 바라보며 밤과 사귀는 동안에 이미 작곡된 것이다.

일본에서 가로시(過勞死)라는 말이 유행이다. 작업 중 쓰러지거나 너무 지쳐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죽는 것이 ‘가로시’이다. ‘가로시’의 원인은 동료 간의 심한 경쟁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요약된다는데 어리석은 작업관이다. 열심을 일에만 해당시켜서는 안 된다. 일할 땐 열심히 일하지만 쉴 땐 열심히 쉬어야 하고, 몸과 마음이 1년 중 가장 많이 지치는 여름철에는 반드시 휴가를 가지고 쉬어야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이 있다. 이 신은 너무나 예뻐서 누구나 신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신을 한 번 신기만 하면 춤을 멈출 수 없는 저주가 스며있는 신이다. 일과 휴식, 활동과 후퇴의 리듬을 잘 맞추는 것이 보약보다 나은 건강법이다. 욕심의 분홍신을 신으면 한 동안 신나서 춤을 추지만 나중에는 지겹고 원망스럽고 멈출 수 없는 저주 받은 인생을 살다가 죽게 된다. 농촌에 살며 전원을 그린 화가 그랜트 우드 씨는 “나의 좋은 작품들은 붓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소의 젖을 짤 때 이미 제작되었다.”고 하였다. 이 거장의 말은 후퇴 속에 걸작이 나올 비결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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