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카타르시스-감격의 16강 진출

2010-06-23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요즘 TV에서 남아공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는 재미는 너무 재미있다 못해 신바람이 날 지경이다. 아니 스트레스가 말끔히 날아가는 느낌이다. 별로 신명나는 일이 없는데다 그렇다고 뭐 뾰족하게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지금처럼 경제가 안 좋은 때에는 더더욱 짜증만 나고 속상하게 하는 일만 자꾸 생기고 하다 보니 생활에 별로 재미를 못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디 속시원히 마음을 털어놓고 쌓이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풀수 있는 기회도 마땅하지 않은 것이 우리네 생활이다. 그 참에 마음껏 소리치고 박수치며 한바탕 신명나게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월드컵 경기가 6월 한달 내내 이어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바람이 나는 일인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경기를 보면서 내 마음, 내 기분, 내 감정이 원하는 대로 한번 속시원히 드러내놓고 내 안에 있는 노여움이나 슬픔, 분노 또는 화 같은 것들을 이 기회에 말끔히 날려버릴 수 있는 것, 이것이 스포츠가 지니고 있는 마력이다. 경기를 보다 보면 오로지 그 경기에 내 모든 근심과 걱정, 잡념 등이 다 사라져 버리게 하는 힘이 스포츠에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당시 3S정책, 즉 screen, sex, sports를 장려한 이유도 그런 뜻에서였다.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권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한 일종의 우민화 정책에 스포츠의 힘을 이용했던 것이다.


스포츠는 그만큼 다른 모든 것을 일체 하지 못하도록 한곳에 집중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다. 경기를 보다 보면 공을 빼앗겨 아쉬워서 탄성지르고 공을 집어넣으면 너무 좋아 소리지르고 경기에서 무슨 수가 나도 이겨야겠다는 승부욕 때문에 경기가 끝날 때까지 죽어라 응원하면서 함성지르고 하다 보면 정말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경기를 하는 시간만큼은 모두가 안고 있던 시름이나 걱정, 근심따위는 다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얼마전에 한국에서 어떤 칼럼니스트가 쓴 기고문에 자기는 죽어도 울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월드컵을 보다 보니 경기에 빠져 울 생각도 잊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난뒤 울려고 하니 기분이 풀려버려 울게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바로 카타르시스(Catharsis) 때문이다. 카타르시스란 원래 도덕적의미에서 순화라는 뜻과 종교적의미에서의 깨끗게 함, 속죄라는 뜻과 의학적의미의 배설이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이 개념과 관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인 생활의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감정을 적절히 표출시키고 배설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온 지구촌이 이러한 열기를 어떤 식으로든 발산시키지 않으면 지구가 위험하다는 분석도 나오곤 한다. 지축이 흔들릴 만큼 온 인류가 한바탕 소리치고 탄성지르고 난리를 치고 나야 지구촌이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것이다. 이제 막 한국과 나이지리아와 벌인 운명의 결전에서 한국이 드디어 나이지리아와 2대 2 동점으로 염원의 16강에 오르는 기록을 올리면서 경기가 종료됐다는 낭보다. 두 시간 내내 태극선수들이 땀흘리며 공을 뺏고 뺏기고 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낸 결실이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승전보인가. 이 결과를 얻기 위해 그동안 태극선수들은 얼마나 가슴 졸였으며 한국은 물론, 전세계 한국인들은 또 얼마나 목이 터져라 응원에 전력을 다했는가.이들이 거둔 결실은 지구 곳곳에 있는 우리 한국인 모두에게 짜릿한 감격과 기쁨을 안겨주었
다. 경기시간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아슬아슬하게 하는 스릴과 감격, 그리고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야말로 카타르시스를 실감나게 하는 경기였다.

우리는 이번 경기에서 소리지르고 박수치고 하면서 스포츠가 지니고 있는 참 맛을 최대한 맛보았다. 그대들이 있기에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준 태극선수단, 그대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 대한민국 승리의 함성!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