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엌과 정지(鼎廚)

2010-06-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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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 (수필가)

우리 집의 부엌에서는 가끔 사소한 의견 충돌로 아내와 가벼운 싸움이 일어난다. 전기나 개스레인지에서 찌개나 국물이 끓어 넘어 덕지덕지 붙은 음식 찌꺼기의 청소는 내 몫이기에 음식을 조리할 때는 반드시 냄비뚜껑을 열어 놓을 것을 아내에게 요구하지만 오랜 습관에 길들여진 그녀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뚜껑을 덮지 않으면 음식 끓는 시간이 길어지고, 냄새도 증발하여 맛도 덜하다고 우긴다. 콩나물국을 끓일 때는 도중에 뚜껑을 열어 보면 비린내가 난다고 절대로 냄비 뚜껑을 열어 보지 말라는 주의를 많이 준다. 그래서 비린내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아내가 콩나물국을 끓일 때면 아내 몰래 뚜껑 열어 보기를 여러 번 하여 보았으나 한 번도 비린내 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잘못된 선입견이 굳어지면 정설(定說)이 되는 과정이다.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재단하려 하면 항상 불화가 생긴다.

정지간은 ‘부엌’의 방언(강원, 경상, 전라, 충북)이다. 옛날에 사내아이가 누룽지라도 한 덩이 얻을 양으로 정지간을 드나들면 뭐 떨어진다고 할머니들이 쫓아 낸 적이 있었다. 그곳은 여성들만의 공간이고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다. 나뭇단을 들여 놓는 머슴이나 막 일꾼들이나 출입하던 일종의 남성 금지구역이기도 하였다, 필자가 철이 들기 전쯤의 기억이다.육이오가 지나고 십년 후 대학에 가니 미국유학을 마치고 온 교수들이 미국문화를 소개하며 남자들도 부엌에서 아내를 도우니 여러분들도 앞으로 결혼하면 부인들의 부엌일을 도와주어야 문화국민이 된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현대 주택은 생활공간이 가족 누구라도 부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아궁이와 안방이 따로 있던 전통 한옥의 구조에서만 살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 그때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육이오 동란 후 수복된 남한은 모든 산업이 마비된 상태였으니 가정의 전기는 조명일 뿐이고 밥 짓고 음식조리는 성냥개비처럼 가는 장작이나 숯이 전부였다. 그러니 풍로나 아궁이에 지피는 열량은 부족하여 눈물깨나 흘리면서 부채질 하며 밥 짓던 어머니나 손위 누님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연탄이 보급된 일은 훨씬 후에 일이다.일제 코끼리 전기밥솥이 한국을 휩쓸더니 이제는 일제를 능가하는 한국산 전기밥솥이 우위를 점하고 아무 방에서나 풀러그만 꽂고 이동식 개스 레인지 위에서 반찬을 만들면 아무 곳이나 부엌이고 정지간이다.

시집올 때 수줍어하던 새색시가 나이 들면 안방 호랑이로 변한다던 노인들의 한탄이 이해가 간다. 음지가 양지되어 호기스럽던 남성의 위엄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할머니의 음성에 슬슬 기는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옛날이여 옛날이여 그래도 그때가 좋은 시절인가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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