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데스의 잉카소녀에게 말한다

2010-06-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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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안데스 고원에 터를 잡은 잉카제국의 옛 수도 크즈코에 도착했을 때는 잉카제국 황제 ‘아타왈파’즉위 500주년 행사준비가 한창이었다. 비좁은 공항터미널에는 관광객이라기보다 탐험가의 기분으로 길을 나선 듯 보이는 사람들로 분주했고 이들은 가난한 현주민들의 경제생활을 돕는데 큰 몫을 한다.
관광수입을 재원으로 하는 원주민의 생활은 궁핍해서 보는 사람조차 괴롭다. 예수 풍습대로 살아가는 그들은 문명생활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가난의 원천이 그들의 느린 발걸음에서 온 듯해도 가난의 고통을 그들의 얼굴에서 안 찾아진다. 관광객이 멈추는 곳에는 잉카의 이름으로 만든 중국제 선물품으로 가득했고 가게주인은 어김없이 잉카 전통의상을 한 여인들이다.

한반도로 이주한 우리 조상의 일부가 다시 이동해 알라스카를 거쳐 남아메리카 남단에까지 퍼졌고 지금은 현대문명의 외지에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한 떼의 히스패닉계들이 방문차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잉카인들의 문명수준을 오랜 이슬람의 지배와 카톨릭교회의 억압으로 어둡게 살던 유럽인들의 생활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잉카트레일을 닦고 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마추피추의 성벽은 달러지폐가 들어가지 않을 만큼 견고했고 기하학적으로 수놓은 화려한 색상의 직물은 지구상 누구도 만든 적이 없고 ‘나즈코라인’을 레이저빔의 도움 없이는 현대인들도 이룰 수 없는 문명이다. 그러나 피사로의 200여명의 군대에 의해 황제는 살해되고 원주민도 쫓겨나 백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그렇다고 잉카문명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지구상 가장 높은 평원에 있는 가장 큰 호수인 ‘라고 티카티카’를 찾았다 ‘흔들리는 섬’이라 불리는 이 섬에는 백인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던 잉카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화려한 색상의 전통의상으로 차려입은 여인들이 자신들의 노래와 춤으로 우리를 맞는다. 섬의 구조설명이 있은 후 관광객을 나누어 각자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가정생활을 보여준다. 집이라 해도 갈대짚으로 만들어져 오염된 물위에 떠있는 집이어서 악취는 오래 머물러 구경하기가 불편했고 집주위는 애들로 붐볐다. 생활풍경사진을 찍다보니 설치된 판매대에서 팔 물건을 정리하는 한 소녀가 눈에 띈다. 몽골의 얼굴형을 한 전형적인 잉카소녀였다. 중년이상의 여인들만 모여 사는 이 섬에 어린 소녀가 있다는 것이 의아해 말을 건넸으나 헛일이었고 사진으로 대신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상점에 들러 살 물건을 찾는데 섬소녀와 같은 또래의 두 소녀가 점원과 말
을 한다. 점원의 얘기로는 직장을 구하는 소녀들이란다. 이곳에서도 현대화의 물결은 고집스런 잉카소녀들의 두텁고 짙은 색상의 옷을 벗게 하고 있다. 비행기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창밑으로 큰 호수가 보인다. 사진기에 영상이 있을 뿐 이름도 모르고 헤어진 섬의 소녀에게 말을 한다. “너는 아름답고 미래가 있는 소녀로다. 비록 너의 선조는 피사로의 총에 죽거나 살아서는 노예가 됐
으나 네 몸에는 영광스런 잉카의 피가 흐르고 있다.

지금의 어머니 품이 따뜻해서 섬에서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전문직을 얻기 위해 학교를 다녀 영어를 익히고 혹은 기술습득을 위해 섬을 떠나거라. 항해를 위해 항구를 떠나는 일이 어렵다해도 너를 기다리는 도시의 자유스런 공기는 밝고 더 넓은 풍요한 세상으로 너를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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