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의 만세 3창

2010-06-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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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 (골동품 복원가)

명치유신(1868)을 성공시킨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등공신 열 명은 미국 특히 유럽 각 나라를 일년동안 순방하고 돌아온다. 이들은 일본의 국채를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프러시아(독일)의 군국 독제체재를 혼합한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신권독제체재를 수립해 나갔다. 인간이면서 신인 천황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극대화 시켜 나가는데 미쳐 돌아갔다. 이때 제도화 된 것이 ‘만세 3창’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하기 직전까지 모든 전선에서 미군의 기관총이나 화염방사기 앞에 일본도를 빼들고 “돌격 앞으로”하면서 “댄노해이가 반쟈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십대, 이십대 초반의 동경제국대학 학생들이 가미가재 특공기에 몸을 싣고 미군전함에 돌진해 들어가면서 ‘댄노해이가 반쟈이”를 절규하면서 죽어갔다. 이것이 일본이요 만세 3창의 실상이다.

1950년 6월26일 아침 6시 일본수상관저! 잠결에 적색전화기 수화기를 귀에 댄 수상 기시는 수상기를 내팽개치고 벌떡 일어나 앞마당에 나가 황성을 향해 외친다 “천황폐하 신의 선물이 왔습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덴노해이가 반쟈이! 덴노해이가 반쟈이! 덴노해이가 반쟈이! “패전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다 ‘신국불폐’라는 국가정체성이 무너져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일본이 전쟁전 수준으로 복귀하는데는 30년이 걸릴 거라는 것이 당시 세계의 정치, 경제석학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그런 일본이 6.25특수에 힘입어 단 3년만에 폐허로부터 완전히 복구하고 그 희생양으로 한반도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1961년 5월16일 이름하여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육군소장 박정희가 최고실력자로 전면에 등장하자 일본정부 특히 경제계에서 덴노해이가 반쟈이!가 터져나왔다. 당시 일본은 6.25특수도 한물 가고 생산과잉에 넘치는 자본이라는 극심한 ‘디프래’상태에 빠져 있었다. 당시 일본정치계와 경제계를 완전히 주름잡고 있었던 일본군국주의 시대의 군벌에게 일본군 출신 박정희는 여간 반갑고 고마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한일정상화가 한일굴욕외교를 반대하는 시민. 학생들의 극렬한 반대데모 속에서1965년 6월22일 한일국교가 조인되었다. 화식식당은 일본식당으로 간판이 바뀌고, 꼬치는 오뎅으로 불리고, 요정에서 한인정계 실력자들이 일본국가를 열창하다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문제가 되는 등, 그리고 30년 한류로 속앓이를 하는 판에 IT에서 밀리고 자동차가 한국차에 위협을 당한다고 일본 언론매체들이 연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 전운이 감돈다는 소식이다. “덴노해이가 반쟈이”를 한국 덕에 또 한번 외쳐볼 찬스가 올지도 모른다. 김칫국 마시지 말라. 전쟁은 없다. 만의 하나 남과 북이 자제력을 잃고 진정 전쟁으로 가려는 조짐이 보인다면 2백만 미주한인들은 조국으로 달려가 동해에서 서해까지 38선에 사람의 장벽을 쌓는 한이 있더라도 동족상쟁은 결사 막아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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