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을 속이지 말자

2010-06-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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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자유기고가)

동전 한 닢이 굴러간다. 무심코 굴러가는 동전을 신발로 잡았다. 그리고 동전위에 멈추어 서서 나와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신발 밑에 있는 동전을 주워 주머니에 넣을 것인가, 아닌가? 밖에 있는 악마는 없다. 나와 내가 싸우고 있는 나라는 존재 자아(自我)는 무엇일까?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남을 속이지 않는다면 진정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새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올수 있을까?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속이고 금단의 열매인 사
과를 따 먹었다. 그것이 인간의 원죄이다. 하나님을 속인 그 나쁜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기위해 남을 속이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 인간들의 공동 집단체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집단을 속여야 하는 세상, 한 나라가 살기위해 다른 나라를 속여야 하는 세상, 손자병법에는 속임수로 적군을 속이는 것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의 비법이라고 가르친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질 중 건전하지 못한 3가지 요소가 있는데 탐욕과 증오, 그리고 무지이다, 탐욕가 증오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무지의 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사물의 현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정견(正見)의 훈련이 필요하다.
정견(Seeing Correctly)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심리학적 견지에서 프로이드(Freud, 1856-1939)파에 의해 자아라고 불리는 것은 모든 것이 의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통상적인 의식하의 컨트롤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러 기능이 혼합된 다이내믹한 세트인 것이 자아이다. 우리는 밖에 있는 악마를 찾을 필요는 없다, 허위의 근원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벌가벗은 임금님’이란 동화와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허위의 근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이다. 임금님의 옷은 걸어가고 있지만 그 옷 안에 임금님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도깨비 같은 옷만 걸어가고 있는 꼴이다. 걸어가고 있는 우리 육체 고깃덩어리는 임금님의 옷과 같은 것이며 그 속에 있는 나(自我)라는 임금님은 보이지 않는다. 정견으로 자아를 바라보려면 먼저 탐욕과 증오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아를 볼 수 없다. 증오는 남을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데에도 해당된다. 남을 속이기 이전에 내가 나를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이기며 자기를 탓하고 꾸짖어 참 인간으로 남을 사랑하고 사물을 사랑하고 자기와 공생 공존하는 모든 천지생명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동전 한 닢을 주울까, 그만둘까? 하는 나와의 싸움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는 가에 달려있다. 패자도 나(自我)요, 승자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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