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앨 고어가 이혼한다

2010-06-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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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국 정서는 일단 결혼을 했다 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을 함께 하려는 것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민 1세들은 한국을 떠날 때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남편이든 아내든 서로 간에 실수가 있어도 덮고 지나가고 그래서 부부로서의 책임을 다하자 한다. 앨 고어 전 부통령 부부가 40년간의 부부생활을 접고 헤어지기로 했다고 한다.

“40년이나 살고서 무슨 이혼?”소문을 들은 한인들은 뜨악한 표정이다.
부부가 공동으로 친지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의하면 “오랜 심사숙고 끝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며 별거 사실을 발표했다고 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테네시 출신인 이들 커플은 고교생인 17세때 만나 사랑을 키웠고 1970년 결혼, 4남매를 낳아 키우며 아들의 교통사고, 아내의 우울증 등 모든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해오며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혼외정사나 불륜은 일체 아니라고 하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기에 60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각자 갈 길을 가는 황혼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앨 고어가 가장 멋있어 보였던 것은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경쟁, 재검표까지 가는 논란 끝에 연방대법원 판결에 ‘동의할 수 없으나 받아들이겠다’고 한 날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던 모습이었다. 그날 밤 소매를 접어올린 노타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팔을 위로 올리고 미친 듯 춤추던 그 포정,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미련 없고 오늘부터 세계 대통령으로의 꿈을 접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한 통과의식으로 벌인 한판의 춤, 평소의 단정한 모습이 아닌 흐트러지고 망가진 그는 그날 전세계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70년대 후반부터 자료를 수집 중이던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한 캠페인을 주도하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지구 온난화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출간하고 이 책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로 오스카상을 수상 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물러난 이후 환경운동가로서 왕성한 대외활동을 전개하면서 구글사 고문, 커런트 TV 사장 등등 정신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이렇게 바쁠 동안 아내 티퍼는 무엇을 했을까?

일설에 따르면 앨 고어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는 것을 좋아했으나 티퍼는 워싱턴 정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고어처럼 환경운동이나 봉사 활동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면 자신의 사진 찍는 재주를 더욱 개발하면 되지 않았을까? 전 세계를 같이 다니며 남편은 남편 일을 하고 아내는 오지의 사람 사는 모습이나 자연을 촬영하며 그 옆에서 본격적인 사진작가로서의 길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을까?아마 앞으로 그녀는 자신에게 값진 인생을 살 것이다. 내 주위에도 이혼 하는 사람, 재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오죽 하면 이혼할까, 재혼하여 편해졌다니 다행이야 하고 이해한다. 별 문제없이 조용한 부부간이라도 서로의 구역은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그래야 숨 쉴 구멍이 있고 더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주말에는 각자 좋아하는 것을 찾아 좀 떨어져 있자.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습관처럼 살아지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는 금물이다. 어떤 변화에도 대응 할 수 있게 자기만의 세계를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이는 이혼을 대비하여 딴 주머니 차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부부로 사는 동안은 솔직하게 사는 것이 좋다. 살 때는 확실하게 살고 이혼이든 사별이든 헤어질 때는 또 말끔하게 정리하여 이후 보람된 인생을 개척하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이든 자신을 소중히, 스스로 존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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