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역사를 모르는 2세들

2010-06-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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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의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이곳의 몇몇 한인청소년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어떤지 물어보니 답변들이 대부분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의 천안함 사태도,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같은 것도 잘 모르고 또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보편적인 대답이었다. 이런 반응은 한국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조차 거의 대동소이해서 그들 또한 자국의 역사나 처해진 상황 같은 것에 별반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자기 나라가 어떻게 존립해 왔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살고 있다고 하면 맞을 것이
다. 이것은 역사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사회 일원으로서 마땅히 필요한 정체성이나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를 모르고서는 현재의 나나, 미래의 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조명하고 반성하며 올바른 미래를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식이며, 역사의식이 없는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에 머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여러 저명한 사학자나 철학자들도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 된다’ ‘역사란 전례가 가르치는 철학이다’ ‘온갖 인간의 생활에 역사가 있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을 평가함으로써 그 사람들로 하여 미래를 판단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지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유대인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이 지난 역사를 재조명하고 고찰하고 연구하고 전수하는 이유는 바른 역사의식이 현재와 미래를 이어가는 국가, 민족의 발전적인 동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의 희미해지는 역사관, 해외에 거주하는 2세들의 무관심한 역사관에 안타까움을 느끼
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바른 역사관은 바른 정체성의 확립에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취업인터뷰 시 아무리 지원자가 명문대학을 나왔어도 모국의 언어나 역사 등을 모르면 그냥 실격시킨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그만큼 역사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2세들은 코리안 아메리
칸으로서 부모의 나라, 한국의 역사나 한국의 역사적인 인물 등에 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아이들은 머리만 크고 알맹이가 없는 그야말로 속빈 강정으로 크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뿌리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뿌리가 단단하지 않는 나무는 흔들리게 되어있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당연히 쓰러지게 되어 있다. 어떠한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확고한 역사관, 그리고 확실한 정체성과 자존감이다. 이것은 1세들이 살아생전 2세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소위 물질만능주의나 기계문명의 포화상태 속에서 역사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하는 것은 1세들의 전적인 책임이요, 잘못된 교육방식이다.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심각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선조들의 역사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하고 자자손손 잊지 않게 교육해야 할 것은 바로 패배로 고통 받았던 굴종의 역사를 곱씹고 후대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본다. 모국의 역사에 대한 2세들의 무관심은 바로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아직도 보편타당하게 정리되지 못한 반목의 역사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구체적으로 교육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요즘 한인사회에서 김구, 안중근, 이승만, 박정희, 서재필, 안창호 등 한국의 근대사나 미주이민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시대적 상황을 조명하고 진단하는 1세들의 활동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2세들에게도 역사적인 관심이나 인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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