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날 갑자기

2010-06-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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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지난 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커네티컷 주 뉴헤이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일 대학교 졸업연설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메리트 파크웨이의 교통량이 심하여 뒷차가 클린턴의 차를 받아버렸다. 클린턴은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면서 “모두가 천천히 가는데 한 사람만 마음이 급했군.”하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날의 졸업연설 내용과 우연하게도 일치하였다. 클린턴의 졸업연설 요점은 “오늘날 우리는 불안하고(unstable) 고르지 못하며(unequal) 그래서 버티기 힘든(unsustainable) 세계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국 시인 오든(W.H.Auden)이 최근 뉴욕을 방문하고 52가의 어느 나이트클럽에 앉아 시민들의 얼굴을 구경하며 이런 시를 썼다. “평범한 하루에 매달려/ 바에 늘어앉은 얼굴들/ 빛은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음악도 아직 울려오고 있는데/ 자기가 어디쯤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유령의 숲 속에 길 잃은 인간들/ 밤을 두려워하는 당신은/ 영원히 불안하리라.” 현대인의 불안을 잘 묘사하고 있다.

지중해 연안의 항구들은 100년의 전통을 가진 ‘항해 기도회’가 있다. 배를 많이 타는 초여름에 목사나 신부가 뱃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하는 행사이다. 지난 일요일 이런 기도회를 뉴저지 주에서도 시작하였다. 호패트컨 호수(Lake Hopatcong)는 뉴저지 최대의 호수이다. 2,650 에이커로서 13,000척의 배가 있다. 해양경비대가 주최하여 금년 한 해 동안 무사고를 바라는 기
도회를 가졌다.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사건에 대한 불안감을 누구나 갖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기원은 원시종교를 위시하여 현대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 신봉의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의사 와리스 박사(W. Wallace)는 위장병 환자 70%는 음식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불안에서 생긴다고 한다. 사람의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과격한 말, 불화와 분열 등이 사실은 남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불안에서 파생된 결과라고 한다. 고독에서 오는 불안, 죄책에서 오는 불안, 죽음에서 오는 불안 등 불안의 뿌리는 매우 넓고 깊으며, 불안의 형태도 무수히 많고, 불안이 미치는 영향은 거의 무한대이다.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지에 의하면 미국인의 아스피린 복용량은 연간 1인당 225 알이라고 한다. 나만 괴로운 인생이 아니라 모두가 골치 아프고 속상하고 외롭고 불안한 시대이다.


1월 12일 아이티에서 끔찍한 지진의 참상을 겪은 드사메스 가족은 불안해서 아이티에서는 못 살겠다고 하여 친척이 사는 아르헨티나로 이사하였는데 거기에 도착하자마자 지진이 발생하여 두 주 만에 지진을 두 번 겪는 불행을 당하였다. 2차 대전 때 일본인 두 가정이 폭격이 불안하여 도쿄를 떠나 오키나와 섬으로 이주하였는데 그곳이 최악의 격전지가 되었다. 불안은 피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뉴저지 주 가필드 시는 50년 동안 사용해 온 벽(壁)에 대한 법을 지난 주 화요일에 개정하였다. 지금까지는 2피트 이상의 벽을 못 쌓게 되어 있었다. 이번에 그것을 6피트로 바꾸었다. 6피트라면 아이가 기어오를 수도 없고 도둑도 방지하여 불안이 해소된다는 이유에서이다. 하기야 한국의 단독주택들이 콘크리트 벽에 유리 조각을 박고 그 위에 철조망까지 두르던 것을 생각하면 6피트 벽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정말 불안의 해소 방안이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마음의 평안은 샛별과 같고 모든 덕은 태양과 같다. 샛별이 지고 태양이 떠오르듯이 마음의 평화에서 모든 덕스런 행위가 솟아난다. 속이 불편한 사람은 모든 결과가 쓴 열매일 수밖에 없다. 남을 비평하고 중상하는 것도 내 마음에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에 파도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평안해야 용서와 사랑, 선행과 희생 등 긍정적인 행위가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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