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인한 4월과 부활의 의미

2010-04-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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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5년 전인 1945년 부활절, 70여일간의 전투에서 무려 4만명 이상의 미군과 일본군이 전사해 2차 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지로 알려진 태평양 이오지마 섬의 미군기지에서도 어김없이 부활절 예배는 봉헌되었습니다. 비록 승리는 했지만 수많은 전우들을 잃은 비통함에 빠져있는 병사들이 모인 가운데 예배를 인도한 군목은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전투에서 우리는 수많은 전우들을 잃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개신교인도 있고, 천주교 신자도 있으며, 유대교인, 또는 무신론자도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신앙은 서로 달랐지만, 그들은 나라를 위해, 나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진정한 가치를 위해 함께 싸우고, 함께 스러져 갔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새로운 세상을 위한 비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서로가 하나로 뭉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이러한 연대가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부활주일 하루 전인 4월3일 오바마 대통령이 부활절 메시지에 인용한 내용입니다.


굳이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덧붙이지 않더라도 그날의 설교는 예수님의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합니다. 바로 부활은 희생이라는 토대 위에 빛나는 승리의 노래인 것입니다.

미움과 다툼, 분열과 의혹, 어둠 속에 절망과 슬픔만이 가득한 이 땅에 화해와 평화의 도구로 오셔서,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 단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만을 위함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위대한 희생. 그 위대한 희생이 부활이라는 인류 최대 사건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통해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기 원하셨던 예수님의 간절한 열망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진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이지요.

부활절과 함께 4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4월은 계절적으로 부활의 계절입니다.

얼었던 대지를 뚫고 생명이 움트고, 메말랐던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바닥을 보이던 개울에는 빗물로 넘실거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암울했던 회색의 겨울을 뒤로하고 초록의 희망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그의 대서사시 황무지를 통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삶에 희망이 없는 이들에게는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4월의 봄이 미련없이 눈 덮인 대지의 밑에서 숨죽이고 있었던 겨울에 비해 오히려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찬란하도록 가슴 벅찬 생명의 계절에 설렘은 커녕 오히려 더 절망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분명 주변에 존재함을 우리는 압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하나가 되고,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유산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패스워드요, 가슴으로 느끼는 부활의 기쁨일 것입니다.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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