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암을 먹다니…AI 선배들 대단해”

2025-07-20 (일) 0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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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괴식 콘텐츠 유행…기괴한 상상력 봇물

▶ 먹방 유튜버가 AI 모방… “사람이 AI 따라하는 세상”
▶ 강아지·고양이 먹는 모습도…AI 활용 윤리 논란

"홀린 듯이 계속 보게 되는데 어쩐지 제가 30여년간 살면서 쌓아온 상식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입니다."(30대 직장인 이모씨)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다양한 먹방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다.

롤러코스터에서 짜장면 먹기, 달리면서 삼겹살 굽기 등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을 구현하는가 하면 먹방의 주체가 강아지, 고양이 등 동물이 된 모습도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실감 나게 구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는 바로 '괴식(괴상한 음식) 콘텐츠'로, 인간의 입에 넣을 수 있다고 상상도 못 해본 물체를 먹는 모습이 담긴다. 기발한 설정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심지어 먹방 유튜버들이 AI 괴식 영상을 역으로 모방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으며, 살아있는 강아지를 인간이 먹는 모습 등 AI 활용 윤리에 어긋난 영상도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물엿에 빨간색 식용 색소를 넣고, 마시멜로 겉을 태워 '용암'을 만드는 모습
물엿에 빨간색 식용 색소를 넣고, 마시멜로 겉을 태워 '용암'을 만드는 모습
[틱톡 이용자 'sophiesophss' 화면 캡처]

◇ 용암부터 보석, 유리과일, 구름까지

AI 괴식 콘텐츠는 구글의 동영상 생성 AI 모델 '비오(Veo)3' 등이 활성화되면서 등장했다. 이러한 유형의 콘텐츠만을 올리는 전문 AI 크리에이터도 다수 출현했다.

이들은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는 모습으로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는 점이 특징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리 만족시켜주는 기존 먹방의 개념을 벗어난 새로운 차원의 먹방인 셈이다.

용암 먹방이 대표적이다. 화산에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을 숟가락으로 퍼먹거나, 용암이 흐르는 뜨거운 돌을 주워 입에 넣는 모습 등이 담긴다. 먹방답게 음식에 따라 후루룩, 바삭바삭 등 다양한 효과음도 함께 연출된다.


용암뿐 아니라 보석이 박힌 케이크, 과일 모양의 유리,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골드바 등 다양한 소재가 괴식 먹방의 대상이 된다.

직장인 김하린(30) 씨는 21일 "먹방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는 그 사람이 먹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AI에 대체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유행이) 다소 충격적이었다"며 "먹방의 취지가 '맛있게 먹기'가 아닌 '기괴한 것 먹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정모(31) 씨는 "이미지가 참신할 뿐 아니라 물체에 따라 식감을 표현하는 소리도 다양해서 영상을 계속 보게 됐다"며 "기발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보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했다.

◇ "먹방 유튜버, AI와 싸운다"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AI의 괴식을 따라 하는 영상도 함께 유행하고 있다.

현실화하기 어려운 것을 AI로 대신 구현했던 기존 메커니즘과 달리 AI로 구현된 영상을 인간이 실사화하는 '역전'이 이뤄진 것이다.

구독자 140만명을 보유한 먹방 유튜버 'swee***'는 최근 용암 먹방을 패러디하며 "요즘 먹방 유튜버들이 누구와 싸우는지 아시나? AI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용암 먹방 쇼츠는 조회수 600만회를 기록했다.

용암 먹방을 올린 또 다른 틱톡 이용자 'enf***'도 "뜨거운 용암을 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AI 선배님들 너무 대단하셔"라고 남겼다. 이 영상도 약 80만회 조회수를 보였다.

용암 먹방을 따라 하기 위한 레시피도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되고 있다.

투명한 대접에 물엿, 식용색소를 넣은 뒤 그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 토치로 태우는 등 다양한 레시피가 등장하고 있다. 대접 아래에서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면 실제 용암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도 생긴다.

이에 대해 유튜브 이용자 'TAE***'은 "이런 건 AI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사람은 사람이 먹는 것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또 다른 이용자 '이브***'는 "AI가 사람 따라한 것을 따라 하는 인간의 세상"이라고 짚었다.

◇ "딥페이크와 또다른 차원의 문제…플랫폼 규정 강화해야"

비교적 단순한 구성에 먹는 물체만 바꾸면 되는 만큼 괴식 먹방은 끊임없이 유사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AI 콘텐츠의 독창성·창작성 논쟁이 일기도 한다.

괴식 먹방 패러디 영상에 댓글을 단 유튜브 이용자 '안재***'은 "유튜브는 AI로 만든 영상 수익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AI 영상도 실력이 있어야 만드는 것이긴 한데 한번 만들어 놓으면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AI도 그냥 막 만들 수는 없다. 다 돈이 든다", "창작 영상도 만드는 데에 힘이 든다" 등의 반박 댓글이 달렸다.

실제로 유튜브는 독창성 없이 무분별하게 복제·반복 생산된 AI 콘텐츠 식별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수익 창출에서 제외될지 알려지진 않았으나, AI로 제작된 저품질 영상을 통한 수익 창출이 어려워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르네 리치 유튜브 콘텐츠 부문 총괄은 지난 9일 SNS를 통해 해당 새 정책에 대해 "이번 조치는 대량 생산되거나 반복적인 콘텐츠를 더 정밀하게 식별하기 위한 소규모 업데이트일 뿐"이라며 AI 생성물에 대한 일괄적인 규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이용자들은 콘텐츠 생산자의 AI 활용 윤리를 문제 삼기도 했다.

실제로 틱톡에는 살아있는 강아지·고양이 등 친숙한 동물을 인간이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모습, 지렁이로 뒤덮인 인간이 지렁이를 먹는 모습 등이 구현된 AI 영상이 아무런 제지 없이 유통되고 있었다.

해당 영상 댓글창에는 "아무리 가짜여도 이런 것은 만들지 말아달라", "이건 좀 선을 넘었다" 등 지적이 이어졌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딥페이크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이렇게 새로운 것이 생길 때마다 플랫폼 측이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플랫폼들이 필요한 조치를 다 할 수 있도록 스스로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설령 법적인 조치가 아니더라도 국가가 행정지도 등 다른 방식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자 측면에서 보면 창작물에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유해한 내용을 담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라며 "이용자뿐 아니라 이러한 창작을 가능하게 한 생성형 AI 업체, 이를 유통하는 플랫폼 3자가 모두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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