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몇년을 살아도 깨끗한 방

2010-01-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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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공 이황이 단양 군수로 있다가 떠난 때의 일이다. 아전이 관사를 수리하려고 들어가 방을 보니, 도배한 종이가 맑고도 깨끗하여 새 것 같았다. 요만큼의 얼룩도 묻은 것이 없었다. 아전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 글은 한학과 시문으로 뛰어났던 조선 중기의 이식이라는 선비가 쓴 ‘택당집’에 올라와 있는 문순공 이황에 관한 언급입니다. 문순공 이황은 바로 조선조 성리학의 대가 퇴계 선생입니다. 그는 호가 퇴계, 시호가 문순이었습니다.

제는 지금 조선의 선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황 선생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 참 별거 아닌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아전과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는 대목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먼저는 새 군수를 위해서 사택을 수리할 일이 없어졌으니 수고를 아끼게 된 아전이 기뻐하였겠고, 또 가난한 단양군의 관청 살림에 돈을 절약하게 되었으니 백성이 기뻐할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훌륭하고 정결했던 분에 대한 존경과 그런 분을 군수로 모시고 있었다는 자부심이 아전과 백성을 기쁘게 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는 퇴계 선생의 저 도저한 성리학의 완성보다 더 절실하게 그분의 삶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몇 년 동안 생활하던 집을 이제 막 도배를 해 놓은 것처럼 정결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단순히 청소를 잘 하면서 살았다는 것 이상입니다. 자기가 사용하는 물건, 깃들어 사는 집, 활동하는 주변을 정결하게 아끼고 보존했다는 것은 그가 사는 세상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마구 쓰고 버리고 더럽히면서 사는 분들이 허다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더누가 많은 분들이 공공시설이나 물건은 더 마구 쓰고 훼손합니다. 그런 분들이 오늘 심각한 지구 환경을 책임져야 할 분들입니다. 산업 페기물이 어떻고, 자동차 배기 개스가 어떻고 하는 말은 한 걸음 다음의 이야기 입니다. 모든 지구 환경문제의 핵심에는 마구 쓰고 더럽혀 쓰레기를 양산하는 분들의 잘못된 심성이 그 이유로 도사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버려지는 냉장고, 컴퓨터, 가전제품 처리로 세계가 몸살을 잃습니다. 얼마든지 더 사용할 수 있는데도 소비욕구를 이기지 못해 버리고 새로 사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든지 아껴서 깨끗하게 쓰면 오래 새것처럼 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많이 쓰고 많이 버려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구 쓰고 버려왔기 때문에 지금 세계경제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퇴계 선생의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선생의 그 청결은, 물질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단양 군수로서 그 관료생활의 청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청렴하게 사는 것, 남의 것과 자기 것의 선이 분명하고, 함부로 부당하게 처리하거니 공공재정을 전용 내지 남용하지 않는 것, 이런 점이 아전과 백성을 기쁘게 했다고 보겠습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이 시간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점입니다. 그가 몇 년간 사용한 방이 새로 도배한 것처럼 깨끗했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날마다 새롭고 깨끗하게 사용했다는 고결한 삶의 상징입니다. 그는 자기 삶의 시간을 성리학이라는 높은 학문을 이루어 세상의 질서를 찾는 데 썼습니다. 시간만 나면 술자리나 벌이고, 도박, 게임으로 밤을 새는 분들이 적잖은 세상에서 퇴계 선생의 짧은 일화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자기의 존재를 저울질해 보게 합니다.

새해 벽두에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저마다 생각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요?

송순태 /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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