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대걸친 한국사랑 린튼 목사 잠들다

2010-0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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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교육-의료사역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 외손자
전주서 태어나 평생 의료봉사 북한 돕기도 적극 참여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해온 미국의 유명한 선교사 집안 린튼 가문의 어른이었던 드와이트 린튼 목사(한국명 인도아)가 11일 애틀랜타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린튼 목사는 11일 밤 애틀랜타 인근 게인즈빌에 있는 체스넛 교회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한 뒤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지 여사와 딸 베스 등 3남2녀가 있다.

린튼 목사는 구한말 근대 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1868-1925)의 외손자. 1927년 전주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52년 다시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갔다. 이후 25년간 한국에 머물며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1973~1978년에는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1992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고 방북했을 당시 통역으로 동행했다.

특히 린튼 가문이 19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인도주의단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hristian Friends of korea:CFK)를 설립할 때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의료와 식량, 농기계, 비상구호품, 우물개발기술 전수 등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또 1991년에는 애틀랜타 인근 한인 밀집지역 덜루스에 한인 2세들과 함께 ‘오픈도어 커뮤니티 교회’를 열기도 했고, 2006년에는 조지아 세계선교대학을 설립해 이사로 활동해 왔다.

린튼 목사의 외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는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간 뒤 전라도 지방에서 활동하며 많은 학교, 병원, 교회를 세우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의 사위인 윌리엄 린튼(1891∼1960) 목사도 장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의 독립을 후원하는 한편 1959년 대전 한남대를 설립하는 등 교육봉사에도 앞장섰다. 2006년 윌리엄 린튼의 손자이며 미국의 세계적 생명공학기업인 ‘프로메가’(PROMEGA) 대표인 빌 린튼 3세가 한남대를 방문, 500만달러의 재정지원을 약속하고, 최근에는 린튼 글로벌 칼리지까지 설립돼 “연세대에 ‘언더우드’ 가문이 있다면 한남대에는 ‘린튼’ 가문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윌리엄 린튼 목사는 아내 샬럿과의 사이에 4남을 뒀는데 셋째가 휴(1926-1984)이고, 넷째가 이번에 숨진 드와이트 목사다. 휴 린튼의 장남인 스티브(59)는 1994년 유진벨 재단을 세워 북 의료지원을 하고 있고 차남인 존(50)은 연세대 의대 졸업 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인은 평소에도 “나와 형 휴 린튼은 구한말 근대 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의 외손자”라면서 “1895년 시작된 유진 벨 사위 윌리엄 린튼(1899~1913년)과 형님 휴 린튼, 4세대인 외증손자 스테판·존·짐 린튼 등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북한선교에 열정을 바치고 있다”며 4대에 걸친 유별난 한국 사랑을 자랑스러워했다.

한편 애틀랜타 한인교회협의회는 고인이 한국을 위해 헌신한 점을 고려,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장례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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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4대에 걸쳐 선교와 봉사활동을 해 온 린튼 가문의 일원 드와이트 린튼 목사의 생존시 모습(앞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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