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음 이야기 - 한국판 예수전

2009-12-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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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나라 한국이 선민이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스라엘 역사를 담은 성경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로 둔갑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은 단군 할아버지, 성군 다윗은 세종대왕, 메시아 예수는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쯤 될까. 이때 한국사의 초점은 온통 그 이순신 장군의 출생과 삶에 모아진다. ‘한국 출신의 구세주’일 그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마땅히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될 만하다. 그의 존재를 ‘단독 특종’으로 보도한 우리나라 역사서 또한 일찌감치 모든 인류의 필독서로 자리잡는다.

히브리어 대신 한국어로 기록된 그 역사책에는 낯익은 우리 민족의 조상들 이름이 쭉 나온다. 그리고 왕조 중심의 우리나라 역사가 기록되기 전에 전 인류의 초기 역사가 먼저 소개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영락없이 우리나라만의 민족신, 지역신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그분은 성경의 첫 책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을 따로 떼놓으신다. 거기에 천지창조와 첫 인간의 타락, 온 땅이 물로 뒤덮인 대홍수, 각 민족별로 언어가 나뉜 바벨탑 사건과 같은 기념비적 세계사를 챙겨 넣으신다. ‘예수 이야기’, 곧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이야기 역시 이러한 전 세계사적 배경 가운데서만 무시 못할 신빙성을 확보한다.


한 사람을 기다려온 역사,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다. 일반 세계사도 인정하듯 수천년에 걸친 이 ‘메시아 대망사상’이야말로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민족의식의 구심점이었다.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역사는 출애굽기, 민수기와 같은 모세오경을 지나 여호수아, 사사기를 거쳐 왕정시대를 담은 열왕기서로 이어진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가 된 시대를 전후로 유대 율법학자 에스라가 편집한 성경 역대상 첫머리에는 창세기 족보가 다시 등장한다. “아담, 셋, 에노스 …라멕, 노아, 셈, 함과 야벳 …나홀, 데라, 아브람 곧 아브라함”(대상 1:1-27).

기독교의 태동과 직접 관련 있는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와서는 신약적 의미에서 창세기 족보가 예수님부터 아담까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그 이상은 다윗이요…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그 이상은 노아요…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 3:23-38).

이 세상에서 족보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당신에게도 반드시 족보가 있다.

물론 성씨만 가지고 당신의 첫 조상을 가리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성씨가 생겨난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선조를 배반하고 자신이 첫 대가 되려고 모반을 꾀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대로 보면 모든 사람들의 족보는 결국 노아를 만나고 아담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예수라는 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와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뿌리 없는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실존한 한 민족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족보를 타고 나신 참사람이면서도 참하나님이셨다. 성경 외에는 이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이 소개되지 않았다. 기독교만이 절대진리, 타락 전에 하나님과 소통하던 ‘진짜배기 삶’을 회복하는 유일한 통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안환균 <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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