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당신 때문에 살맛이 납니다

2009-12-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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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한해는 경제한파로 인해 마음까지 추웠다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돌이켜보면 추웠기 때문에 더 많이 포옹하고, 손을 비벼주고, 외투를 벗어 추위를 막아주려 했던 아름다운 순간들도 비례해서 늘어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 온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지 호흡이 이어진다는 사실만으로 살아 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값지지 않는가? 생명의 존엄성을 따지자면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목이 메는 감사”라며 초침을 살피는 응급실 환자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스스로 속고 속이며 살아가기에 살맛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욕망에 사로잡혀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으며 쉼없이 달려가는 것이 최고인줄 아는 아무도 못말리는 현대병이 ‘성공병’이라고 혹자는 꼬집어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 고민하며 생각할수록 깨달아지는 것은 아주 쉬운 기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인생의 어렵고 힘든 고배를 지날 때, ‘살맛이 나질 않는다’고 말한다.

반대로 생각지 못한 좋은 일로 마음에 힘을 얻으면 ‘살맛납니다’라며 기뻐하기도 한다. 그러면 ‘살맛’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나 의욕’이라고 정의했다.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그 무엇이 ‘살게 하는 힘, 동력’이 된다는 뜻이리라. 우리를 힘나게 하는 것들엔 ‘감칠맛’이 들어 있다. 김치도 막 담근 처음보다 숙성된 맛이 훨씬 더 김치다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어디 김치뿐인가? 글도 맛있는 글은 사람을 살리고 힘나게 해준다. 노래도 ‘맛깔나게’ 불러야 청중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음식뿐 아니라 어떤 세계든지 ‘맛’을 내는 경지에 이를 때 ‘달인’ 혹은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아무나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 어설프게 맛을 내는 흉내는 가능해도,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감칠맛’을 내는 일은 오랜 시간 땀 흘리며 노력하는 대가를 지불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얼마 전 ‘당신의 부부 사이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설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다. 그 뒤에 따라붙은 통계 수치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어 마음이 착잡했다.

하루 평균 398쌍, 매년 12만쌍, 대한민국 이혼률 54%로 세계 1위!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쉬운 시대, 이혼도 당당한 선택이 되어버린 세상. 파격 불륜 스토리가 식상할 정도가 된 요즘 드라마는 화가 날 지경이다. 시대를 탓할 게 아니라,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건강한 의식과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느낀다.

우리 가정만이라도 ‘맛깔스런 사랑’이 가득하도록 서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살맛나게 하는 관계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옆의 가족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면 난 오늘도 천국을 느끼며 ‘살맛나는 인생’을 누리게 된다. 내가 맛이 있어야 남도 맛나게 할 수 있기에 스스로를 먼저 살펴야 하고, 비록 아직 어설픈 맛을 지니고 있더라도 살맛나는 인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사랑 조미료’를 듬뿍 뿌려준다면 행복은 따놓은 당상이다. 거울을 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이렇게 외쳐 보자. “당신 때문에 살맛이 납니다!” 살맛나는 당신 때문에 춤추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정한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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