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less America, land that I love~”. 2003년 여름, 이 노래 한 곡을 부르려고,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탔다. 워낙 큰 컨퍼런스였지만 이 노래 부르자고 그 먼 길에 이틀이나 호텔에 묶여 멍~한 내 처지에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가 속에서 끓어올랐다.
드디어 이 노래를 하려고 애틀랜타 컨벤션 센터의 중앙무대에 선 나는, 주시하는 수천의 젊은 눈동자들과 마주하였다. “아! 바로 이 미국, 이 젊은이들을 축복하려고…” 하며 가슴 울컥한 감동이 짜르르~ 흘렀다. 긴 여정의 속앓이도 뒤로 하고 노래하는 내 가슴엔 엄청난 전류가 보태졌다.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미국이나 한국의 국적에 큰 불편 없이 생활하던 나는 가끔씩 단체행사에서 성조가나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때마다 “과연 이런 형식적 순서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뚫고 마음에 스며들까” 하는 의문이 생기곤 하였다. 참석한 사람들의 관심은 본론적인 프로그램에 있을 텐데… 그저 행사의 요식행위로 부르는 애국가에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이런 순서를 과연 내가 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가져 보았다.
몇해 전 한국 축구의 열기가 LA에도 한창일 때, 갤럭시 구장에서 한국과 LA의 경기를 오픈하는 애국가 독창을 부탁받았다. 한 번 대중 앞에서 무대에 서기로 하면, 아는 노래라도 그 가사가 꿈속에서 들릴 때까지 나는 읽고 또 읽으며 뜻을 새겨본다. 동해의 바닷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고, 2,744미터 높이의 백두산이 다 닳아 평지가 될 때까지 하나님이 보전하고 도우시는 나라 ‘대한민국’을 길이 보전합시다~ 라며 미래를 약속하며 결속을 다짐하는 ‘우리 대한민족’ 가운데 바로 내가 서 있었다.
또 지난 5월 ‘할리웃 보울 한인 음악대축제’에 미국 국가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국가 기념행사도 아닌 ‘연예인’ 축제에 웬 ‘성악가’가 국가를? 하는 생각도 스쳐갔지만, 젊은 열기도 즐겨볼 요량에 흔쾌히 ‘예스’를 하고 성조가의 가사를 읽으며 “왜 이렇게 길~담”하면서도 읽고 또 읽었다. 작사자는 영국과 미국 간의 ‘1812년 전쟁’을 겪으면서 가사의 영감을 얻었지만, 내 머리에서는 영화 속 미국 독립전쟁의 장면들이 스쳐졌다.
여명의 넓은 들판에 기상을 알리는 나팔소리 속에 새벽바람에 휘날리는 13개 별의 성조기! 혼란해지는 전투 속에서 그 깃발을 든 한 용사가 불꽃 튀는 포탄 속에서 방어진을 뚫고 뛰고 또 뛰어 적진에 깃발을 콱- 박아 버린다.
성조가 가사를 놓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다보니 가사가 외워졌다. 그리고 가사를 읊조리며 운전을 하는데 예전에 그냥 흘려 보던 미국 국기가 눈에 팍팍 꽂히기 시작한다. 미국인들은 식민지를 탄압하던 영국과의 전쟁에서 방향을 바꾸어, 개인의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위한 ‘독립 국가로서의 선언’을 발표해 버렸다.
이 독립 선포를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 걸고 싸워 얻은 ‘자유의 땅’에서 책임 있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나! 내 눈에 펄럭이는 길가의 성조기를 보는데 ‘God bless America, my home sweet home~!’이 꿈 속 같이 잔잔히 들려온다.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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