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최고의 업적

2008-06-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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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레이건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있을 당시 몹시 바빴지만 아들 론이 좋아하는 풋볼 구경을 가끔 함께 갔다. 어느 날 경기가 끝난 후 레이건 지사는 LA 램 팀의 선수실로 갔다. 아들의 영웅들을 직접 만나보게 하는 것이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마침 문을 연 순간, 선수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자기의 영웅들이 한 두명도 아니고 수 십명이 기도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들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 날을 기억하면서 “그 날 내가 아들을 위하여 한 일이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이었다”고 말하였다.

나는 열두 살 때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성묘를 갔던 기억이 있다.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올라갈 때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페달을 안 밟아도 되므로 신나게 달렸다. 아버지가 뒤에서 “천천히 가라!”고 목멘 소리로 소리를 지르신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나의 자전거 실력을 보여주려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언덕길을 전속력으로 내려갔다. 세 번째 커브까지는 용하게 넘어갔는데 마지막 커브에서 미끄러져서 크게 다쳤다. 아버지가 나를 업고 냇물에 가서 상처를 씻고 옷을 찢어 다리를 싸매주시던 일을 기억한다. 무뚝뚝한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가장 추억에 남는 기억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아들과 딸이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 알리려 한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찌푸리고 겁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속으로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심장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깨지기도 잘 하고 속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우울증은 울만한 적당한 장소를 못 찾는 데서 온다. 아버지란 “내가 훌륭한 아버지 구실을 하고 있나?”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결혼식 같은 때에는 별로 눈물을 안 보이지만 목구멍 속으로 우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늘 착잡하다. 그 이유는 “아들 딸이 나를 닮아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경하게 되기란 매우 어렵다. 이것은 신에 대한 경외와도 연결된다.

아들 딸들은 자기를 위하여 아버지가 언제나 대기 상태에 있는 것(available any time)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 딸을 탓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표현하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
고 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아주 부드러운 심장을 가졌고,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이며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아이의 고향이다. 아버지날을 상징하는 꽃은 민들레이다. 민들레는 짓밟힐수록 다시 일어나 더 힘차게 성장한다.

워싱턴 주 스포켄에 온 동네에서 칭찬받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내가 여섯 남매를 남겨두고 죽었다. 그 자신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상이용사였으나 열심히 일하며 여섯 아이를 잘 키웠다. 이웃에 살며 이 장한 아버지의 희생적인 노력을 지켜보면서 감동을 받은 윌리엄 스마트씨가 오랫만에 집을 방문한 딸 소노다 다드(Sonoda Dadd)에게 이 장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드 여사는 사회활동 정치활동 등을 활발하게 하는 여성 운동가였는데 마음에 감동을 받고 아버지날 제정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윌슨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 서명을 받아냈으며 몇개 주에서 아버지날을 지켜오다가 6월 셋째 일요일을 전국적인 아버지날로 지키
기로 1972년 의회를 거쳐 닉슨대통령이 서명 발효되기에 이르렀다.

나 자신의 어렸을 때의 추억만으로도 어머니에게서는 따뜻함을 받았지만 사람이 되기 위한 굵은 교훈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었으나 가끔 먼지털이를 거꾸로 잡고 종아리를 때리셨는데 아버지의 견책은 무척 필요한 것으로 믿고 있다. 나는 어려서 많은 소설책을 탐독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언쟁이 생겼다. 어머니는 책이라면 교과서를 고집하였으나 아버지는 소설도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폭넓은 교육관이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비하여 자녀교육에 관심이 덜한 것 같으나 대체로 말이 적고 표현이 자상하지 않을 뿐 그 사랑의 농도는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
랑이 배의 돛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키와 같다. 키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으나 배의 방향을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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