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전쟁 - 통곡의 길

2026-05-15 (금) 07:54:04 신응남/변호사·15대서울대미주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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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1636) 그 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인조는 52일 만에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청의 신하가 되었고, 주권은 능욕당했다.

이듬해 음력 1월 30일, 삼전도로 향하는 이 길은, 평양, 의주를 거쳐서 압록강을 건너 심양에까지 닿아 있었다. 소현세자, 봉림 대군이 볼모로 끌려갔고, 포로들 행렬이 구십 리에 이어졌다고 한다. 그 후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은 수도 심양의 노예시장으로 내몰려 사고 팔렸다.

병자호란으로, 50여만명의 백성이 청으로 끌려간지 300년이 지난 후, 슬픈 고난의 역사는 나라 잃은 한민족에게 또 다시 연해주에서 반복되었다. 1864년 연해주를 중심으로 18가구가 이주함으로써 시작된 고려인촌은, 5년후 한반도 북부의 대기근으로 인한 연해주 이주민으로 급증하며, 1914년엔 한인 9만명 집단거주지 ‘신한촌’을 건설했다.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8월 스탈린은 한인이 일제에 협력을 예방한다는 명분을 들어 17만 5천명의 연해주 ‘ 고려인(카레이스키)‘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비명과 통곡 속에서 화물열차에 강제로 태워진 한인들의 여정은 처참했다. 그해 말까지 계속된 이주 길위에서, 추위, 굶주림 그리고 병으로 1만여 명이 숨져갔다.

현재 고려인은 약 55만 명이며 중앙아시아 등 구소련 전역에 살고 있다. 이는 해외한인 중 미국(215만 명), 중국(214만 명), 일본(63만 명)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B.C. 425년에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 페르시아전쟁사>를 최초의 역사서로 본다.

BC 480년 페르시아는 10년 전 마라톤 평원에서의 대패배를 설욕하려고 30만 대군을 일으켜 그리스를 재차 침공했으나, 그리스 연합 해군은 살라미스섬 근처 좁은 해협으로 페르시아 해군을 유인후 기습 공격을 펼쳤다. 일격을 당한 페르시아 해군은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그 후 그리스의 패권을 둘러싼 아테네와 스파르타 도시국가들이 무리를 지어 충돌한 그리스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30년 내전으로 기력을 탕진한 그리스 세계와, 아테네에 패한 페르시아 제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에 정복당하며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20세기 유럽의 국가들도 그 길을 답습해,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길을 외면하고, 식민지 쟁탈전, 패권 경쟁에 매달린 끝에 1,2차 대전으로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올 2월에 신흥제국 미국과 BC 5C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 이란과 벌어진 전쟁으로 전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21세기에 사는 문명국가들도 여전히 ‘부족 본능’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 모두는 국가 안에서 국가와 관계를 맺으며 산다. 누구도 국가를 떠나서는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줄곧 강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독립은 자주 훼손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며, 도전에 실패를 반복하는 국가와 민족은 멸망한다 했다.
모든 문명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 성향과 최소한의 윤리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모든 문명에는 살인과 강도, 절도를 금지하는 도덕적 규칙이 있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행위를 권장하는 윤리규범도 있다. 그럼에도, 왜 인류역사는 정복 전쟁, 약탈 행위와 대량 학살로 얼룩졌으며, 사회 내부의 억압과 착취는 사라지지 않는가?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토인비는 ‘서구 문명의 내전’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후 로 문명의 충돌로 일어날 세계 전쟁은 핵무기를 동원한 ‘사피엔스의 내전이 되어 역사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여전히 인류의 번영과 존속의 우려를 자아내는 패권 제국들의 행보를 목도하는 요즈음이다.

<신응남/변호사·15대서울대미주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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