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독서칼럼 / 추상력

2026-05-19 (화) 07: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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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보통 화가는 빈 여백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무슨 색칠을 하든지 표면을 채우고야 만다. 하지만 세잔(Paul Cezanne)은 여백을 비운채로 보존하려고 애썼다. 세잔에게 그림이란 채워야 할 무엇이 아니라 비워야 할 무엇으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추상력이다. 세잔의 추상력은 형식보다 진정성을 중요시 하는데서 싹텄다. 세잔은 사과 하나의 진정성을 얻기 위하여 주변에 있는 테이블보, 벽, 혹은 커튼 따위를 미완성으로 남겨놓곤 하였다. ‘포기, 비움, 배제’는 추상화로 나가는 첩경이다. 추상성 하나로 세잔은 사과 정물화의 대가가 되었다. 세잔이 그린 사과 정물화는 다른 화가가 그린 것과 사뭇 다르다. 보통 사과가 아니다. 추상성에 의해서 특이한 빛을 발하고 있다. 고고하다. 투명하다. 엄숙하다. 함부로 먹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발길을 그 앞에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잉고 월터의 ‘Impressionism' 중에서)

추상력(抽象力). 복잡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다듬고 단순화하여 핵심을 드러내는 제련 능력을 말한다. 추상력은 표면의 배후에 깊이 갇혀있는 보화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드러낼 때 그 빛을 발한다. 예술가 시인, 과학자, 사려 깊은 신앙인이 주로 하는 일이 추상화 작업이다. 그들은 복잡한 전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본질을 표현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모세는 한때 실패자였다. 기껏해야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다. 모세의 실패는 능력의 실패가 아니었다. 모난 성품을 다듬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모세가 지닌 모난 성품을 도리질하고 다듬는 데 40년이 걸렸다. 40년 후 모세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추상력이다.
추상력이란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꼭 필요한 요소를 살려내어 다듬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추상력을 얻는다. 신앙의 세계에서 추상력은 큰 의미를 지닌다. ‘내려놓음’, ‘비움‘, ‘포기’는 영적 추상력에 해당한다.


단순함(simplicity)은 추상력을 얻는 위대한 지혜이며 힘이다. 무엇이든지 젊고 순수하고 강력한 것은 단순했다. 사람의 내면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하고 잡다한 것들을 비워낼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잡다한 일상의 가방을 겸허하게 내려놓을 때, 비로소 추상력을 얻고 진실한 내면의 무게를 간직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 한 사람이 웃었다.”, “젊은 남자가 호쾌하게 웃었다.”, “남자가 웃었다.” 위의 세 문장 중 가장 젊고 생생한 문장은 무엇일까 “남자가 웃었다.” 이다. 생략, 비움, 침묵이 있는 문장이다. 전정과 순지르기를 잘 한 문장이다. 말과 문장을 잘 다루는 사람은 상투적인 것(cliches)을 잘 죽이는 사람이다. 바로 여기에서 추상력은 빛을 발한다.
바울은 고백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언뜻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투명한 내면을 들여다 볼 때, 그 안에서 조용히 들어 난 단순화를 거친 무게감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추상적 모습이다. 바울은 이것을 신앙인의 진정성이라고 불렀다.

예수, 모세, 바울, 세잔처럼 삶의 언저리에 붙어있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추상화하라. 그때부터 당신은 진정한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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