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테네에서의 후회

2007-10-30 (화)
크게 작게
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여행은 다람쥐 채바퀴 돌리는 삶을 새롭게 하는 기회를 준다. 환상적 모자익 미술의 발상지 비잔틴 세계로의 여행이 쉽지 않더니 긴 세월 취미를 같이한 친목회원 아내들의 말릴 수 없는 열정이 이를 가능케 했다.

4~6천년 전 태어났으니 망정이지 이 시대에 태어나 그런 일을 하려 했다면 백성에 의해 정신병원에나 보내졌을 사람들이 남긴 거대한 ‘에게해 문명’ 유물은 아름다운 선이 더해져 있었다. 아테네 호텔에서는 간호학교 동창 두 가족이 더 합류한다. 독일에 사는 치과의사들이란다. 졸업
후 할머니가 되어 만나는 기쁨이 너무 커 한 분은 눈물까지 흘린다. 꿈 많던 학창시절엔 예쁜 소녀로 무척이나 감상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18명 일행이 지하철을 타고 두리번거리며 관광길에 나서는 우리 일행은 현지인들의 관광 대상이 되기도 한다. 관광 후 모두가 샤핑에 나서건만 현지인들을 만날 겸 홀로 노점식당에 앉으니 재회시 눈물을 흘리던 그 여인이 우연하게 동석한다.

“무척이나 감상적인 분이세요. 감격해 하는 동창들 중 혼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어요. 성공한 사람은 감격도 남다른가봐요” “저는 졸업 후 뉴욕 동창들 만나기가 처음이예요.” 치과의사로 알고 있는 그녀의 평법한 질문에 내 대답은 엉뚱했다. “애들을 안고 바삐 살던 시절 간호학교 동창이 대다수인 모임의 문을 여는데 제 아내의 학력은 이를 주저케 했지요. 하지만 4반세기 동안 매달 만나 취미생활을 같이 하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어요. 때로는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었지만 그 분들은 성공한 남편들을 옆에서 보며 사는 행복한 여인들이죠. 그 학교는 능력있는 예쁜 소녀들만 뽑아 간호사로 키웠는지 활동적이고 미인
들이지요. 같은 간호사이면서도 명문대학을 나온 제 아내의 동창 모임보다 더 선호하지요. 다른 곳에서 성공한 동창이라도 뉴욕 동창만큼 바른 선택을 한 사람은 드물거예요” 무척이나 부풀려진 대답이다.저녁 이별의 만찬이 끝날 무렵 독일에서 온 일행 남편인 의사가 특별히 할 얘기가 있다며 일어선다. “앞에 앉은 동창에게 쌓여있는 마일리지로 비행기표를 사놓았으니 이번 여행에 동행하자 했어요. 단순한 관광이나 뉴욕 동창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거절할 것 같아 거짓말 했지요.

‘깜짝 여행’의 성공을 위해 한 일이지만 이렇게 모이니 즐겁지요”
그렇다면 낮에 그녀가 성공한 의사로만 알고 못난이가 되어 자신과 동창들을 추켜올려세워 말한 것은 큰 실수를 한 것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슬픈 그녀를 더욱 안타깝게 해주어 졸지에 망난이가 된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
같은 시간, 아테내 공항의 다른 터미날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남편과 사별 후 4명의 자식을 홀로 키우는 간호사임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 이제 재회시 혼자서만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지금의 생활이 좀 안스러워도 망망대해를 향해 서울이라는 항구를 떠나던 때의 용기를 잃지 마세요. 바쁜 중에서도 여행의 기회를 가지다 보면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고 친구를 찾는 여행이라면 뉴욕이 최적격이겠죠. 다시 한번 만나볼 기회가 있으면 하는 희망도 이루어질 수 있을테니까요.-

멀어져 가는 터미널 어디에서 홀로 있을 그녀의 행복을 이렇게 기원하며 용서를 빌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