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

2007-10-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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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홈아트 갤러리)

그림쟁이가 글을 쓰는 것, 쑥스럽기도 하며 한편으론 글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어느덧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빨간 단풍잎 위에 하얀 눈이 쌓이는 풍경, 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치는 장면은 설악산과 대관령 같은 고지대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뉴욕은 애플 피킹 시즌, 만추이다.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과가 가장 맛있을 때는 언제인가? 여름, 초가을, 아니면 늦가을?

배 곯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고충을 알지 못한다. 사과가 가장 맛있을 때는 계절이 아닌 배고플 때이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 단 한 순간이라도 공기가 없으면 나의 생명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우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빵은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공기와 물과 같은 것이다. 옛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똑같은 사과 그림 한 폭을 앞에 두고 배 부를 때 보는 것과 배 고플 때 보는 감정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를 추천해 주기를 바란다. 수 만개의 그림 중 과연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나는 음악가는 아니지만 음악을 좋아한다. 젊은 시절에는 팝송을 좋아했다. 부모들이 좋아했던 유행가나 민요가 TV에 나오면 어쩐지 촌스럽게 보였다. 느릿느릿한 박자도 싫었다. 세월이 변하면서 내가 부모 나이가 되어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빠른 박자가 싫다. 뽕짝이라고 촌스럽게 생각했던 그 유행가나 옛 민요가 지금은 좋다.

한국도 요즘 미국처럼 그림값이 무척 뛰었다. 가난했던 국민소득으로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거액으로 거래된다. 한국 화가들에게는 무척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값이 높다고 해서 그림도 높이 평가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에 거기에 합당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빛을 못 보던 그림이 그 화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라디오 뉴스에 가격을 10배로 올려 쇼윈도우에 새롭게 단장하는 쟁이들의 얄팍한 상술일 뿐이다.

음악은 귀를 매체로 자기에게 다가가는 자기의 감정이다. 그림은 눈을 매체로 자기에게 다가가는 자기의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은 설명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림은 입술이나 혀끝으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림은 백번 귀로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많은 공부가 된다.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지능이 발달하듯 그림 또한 많이 보면 볼수록 눈높이가 높아진다.물고기가 물을 모르고 살아가듯 우리는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뉴욕의 많은 뮤지엄들이 우리 옆에 있지만 그곳에 한번도 못 가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한 폭을 자기 방에 걸어보라. 어떤 그림은 보면 볼수록 향기가 풍기는 그림이 있으며 어떤 그림은 곧 싫증나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싫증나는 그림이라고 해서 버릴 필요는 없다. 묻어 두었다가 30년 후 다시 보라. 그땐 그 그림값이 30배 뛰어있을지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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