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2007-10-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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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유엔창설 기념일인 24일 정명훈씨가 지휘한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유엔총회장에서 각국의 외교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 연주회를 가졌다. 이 오케스트라는 이 공연을 전후해 두 차례 무료 공연을 하여 뉴욕의 한인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가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연주회는 솔로나 듀엣이나 3중주, 4중주도 모두 좋지만 여러가지 악기가 어우러져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가 역시 화려하고 장대하여 더욱 좋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의 편성이나 규모는 시대에 따라 달랐고 지금도 연주 장소나 그밖의 사정에 따라 가감된다. 그러나 대체로 연주자가 수 십명에서 100명 내외가 되어야 제대로 갖추어진 오케스트라가 되고 최소한 30명은 넘어야 오케스트라 다운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오케스트라에서는 현악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가 골고루 들어가야 하고, 규모가 커질 때는 하프나 피아노, 올갠 등이 추가된다. 오케스트라의 성공적인 연주를 위해서는 어떤 악기를 취사선택하고 어떻게 배치하느냐 등 모든 점에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연주자와 지휘자의 역할이 잘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악보에 따라 연주를 한다. 그러나 악보는 드라마의 대사와 같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연출가가 배역의 대사를 잘 표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주자의 연주를 오케스트라 전체의 연주에 맞게 이끌어 주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에 몰두하면서도 항상 지휘자의 움직임을 주시하여 지휘자와 호흡을 맞추어 나간다.

그렇다고 하여 지휘자가 제 멋대로 음악을 끌고가는 것은 아니다. 지휘자도 악보에 따라야 한다. 악보를 따를 뿐 아니라 악보에 따라 음악을 잘 살리기 위해 면밀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연주자들이 잘 따라오도록 유도해야 하며 만약 어떤 부분에서 연주가 잘못 되더라도 연주를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유능한 지휘자는 수많은 악기 중에서 어느 한 가지 소리에 이상이 있을 때 즉각 발견하여 시정하도록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만들어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려면 지휘자와 연주자가 각각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혼연일체의 화합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연주자가 제멋대로 연주하거나 지휘자가 제멋대로 지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지휘자가 지휘를 제대로 모르면서 지휘봉을 너무 막대기처럼 휘둘러댄다면 그 연주회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유명한 오케
스트라와 그 지휘자의 명성은 결코 터무니 없는 명성이 아니다.그런데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우리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단체나 기업체, 국가 등 많은 공동체가 있는데 이 공동체에는 구성원이 있고 구성원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있다. 구성원을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라고 한다면 지도자는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지도자와 구성원의 관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
자와 연주자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지도자나 구성원이 다같이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악처럼 공동체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이기주의가 너무도 극심하게 판을 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를 보든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다른 연주자가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데 나만 잘 연주한다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상생의 원리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한 나라에서 국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탈법과 부정을 일삼는다면 연주자가 악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여 연주회를 망치는 것처럼 나라를 망치고 말 것이다. 또 지도자가 법을 지키지 않거나 국민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면 지휘자가 지휘를 잘못해 음악을 엉망으로 만들듯이 나라를 결단내고 말 것이다.

모두 자기의 본분과 사명에 충실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할 때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국의 사회가 이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잘 어우러져 세계에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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