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산은 왜 거기 있는가

2007-10-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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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나는 요즘 주말이면 건강도 챙기고 일도 할 겸 겸사겸사 산행을 하고 있다.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한주동안 삶에서 얻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방에 다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다. 특별히 올해 등산에서 느끼는 점은 몇 해 전에 내가 산행을 할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한인들이 산을 즐겨 찾고 있다는 점이다.

산행은 주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코스를 택하다 보니 뜻밖에도 그곳에서 평소 잘 아는 지인들의 모습을 여러 명 볼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만난 우리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평상시 보다 더 반가워하였다. 그만큼 이제는 산행이 우리 이민 온 한인들에게 생활화 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도심에서 차로 두어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은 마치 한국의 도봉산과 같이 주말이면 쉽사리 찾는 곳으로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선지 요즈음은 골프라면 사족을 못 쓰던 주변의 지인들조
차 산이 좋아 등산을 하며 몸 단련을 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본다. 그 정도로 산이 갖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진 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것은 산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실제로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산에서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가 될 수 없음을 새삼스레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기분, 그리고 짜릿한 황홀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흥분과 설레임 등. 말로는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의미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프랑스의 산악인 장 프랑코는 “등산은 스포츠이자 탈출이고 정열이기도 하며, 일종의 종교와도 같다“고 말했다.

산은 왜 거기에 있는가? 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생각하게 한다. 산은 마치 어머니의 품과도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얼굴이 다른 산은 사시사철 인간을 품어주는 것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행을 하면 산의 얼굴이 화색이 도는 것을 느낀다. 산은 항상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같이 늘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봄, 여름, 가을은 그렇지만 눈이 많이 내린 그 추운 겨울에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을 보면서 “왜 그 추운 날에 산에 가느냐?” 하지만 겨울 산엘 가보라. 바깥 날씨는 살을 에일 만큼 춥지만 산행을 해본 사람은 알다시피 그 겨울 산이 얼마나 따뜻하게 보이는지 모른다.

산은 기약 없이 인간을 기다린다. 마치 찻집에 앉아 누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표정과 똑같다는 느낌이다. 그 중에서 기다림을 평생의 일로 삼고 사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기다리고, 아이를 낳으면 빨리 크기를 기다리고, 또 성장하고 나서는 잘되기를 기다리고 그 밑에 손자, 손녀가 나와 할머니가 되어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 것이 바로 어머니의 모습이고 어머니가 해야 할 몫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산을 걸어 올라가면 흡사 어머니의 등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다.

우리는 산이 많은 한국에서 나서 자라 그런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이 산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편이다. 그럴 만큼 우리는 산이 하나의 생활이고 산과 함께 살다시피 했다. 그래선지 우리는 산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크게 새삼스러워 하지 않고 산에 대해 별로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산행을 한번 해보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 가지의 고마운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고마움을 산행에서 찾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등산을 전문으로 하는 산악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산행은 인생살이와 같다’고 한다. 때문에 산악인들은 인생을 두 번 산다는 말들을 한다. 산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잘못된 삶을 살지 않는다. 고마움을 알게 되고 험한 길을 차근차근 올라갈 줄 알고 산이 지니고 있는 품, 자연의 품에 안길 줄을 알기 때문이다. 또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바른 길로 정의롭게 산다. 교만하지 않는다. 타인을 볼 줄 안다. 이런 것은 바로 ‘어머니’라고 하는 존재가 바라는 교육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산의 기다림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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