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2007-10-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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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한 개인의 능력은 그 사람의 타고남과 자기 개발, 그리고 자기 관리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든이 넘어서도 총총한 기억력과 형형한 안광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우 인생의 반환점인 불혹의 나이에 벌써 죽지 못해 사는 병약함을 운명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여력이 있는 한 일하기를 원하며, 일이 있기 때문에 노년기를 더욱 생생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삶 자체의 궁극적인 보람과 목적은 결국 인생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마무리하면서 사회를 위하여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는 일일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하여 자신의 만년을 인류문화에 공헌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베르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팔스타프’를 쓴 것은 80세, 괴테가 24세에 쓰기 시작하여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2세, 버틀런드 러셀은 무려 아흔이 넘은 나이에 원폭금지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주도하여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은 여든이 넘어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의 끈을 놓지 않은 타고난 작가로 꼽힌다. 그 결과 두권의 자서전 ‘내 피부 아래’와 ‘그림자 속을 걷다’는 자서전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82세였던 2002년 소설 ‘가장 달콤한 꿈’을 출간하여 올해 미수(88세)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값진 인생을 일궈냈다.

어디 그 뿐인가. 인류사회의 동력기관의 원천인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는 긴 연구생활을 끝내고 은퇴를 한 나이는 64세였다. 이미 부와 명성을 거두어 어느 것 하나 부러움이 없는 그는 크루즈 여행도 하고 상류층 유명인사들과 교제를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문득 두려운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제임스 와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정신기능의 쇠퇴였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고, 기억력이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뒤, 그 위대한
발명가가 글래스고 항구의 수도회사에서 입사하여 80세까지 평범한 노동으로 누구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마감했다.

우리 주변에도 뛰어난 경영인들과 석학, 예술가들이 시들지 않은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으로 노년을 눈부시게 꽃피워 우리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지금 노령화시대에 이런 편견만 버린다면 우리는 유능한 노인 인재들을 더욱 많이 탄생시켜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더구나 이제 노령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면 우리들의 인식부터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
인들은 병들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으며 정신적으로 비생산적이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65세 이상의 어른들을 병약한 노인으로 생각하며 직장에서 더 이상 지적-신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시각은 ‘고령사회’에 대한 건전한 인식을 해치는 또 다른 하나의 편견이 아닐 수 없다.

노인에 대한 예우와 존경이 없는 사회의 노인은 불행하다. 그러나 존경할 노인을 갖지 못한 사회의 젊은이들은 더욱 불행하다. 노년기는 바로 우리들의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늙음은 당연한 일, 삶이 정녕 소중한 것이라면 나이가 드는 것은 그만큼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흔히 ‘21세기 불로초’를 다름 아닌 ‘자기관리’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한 대학의 총동창회장 이취임식을 갖는 자리에서 사회자가 외모만을 보고 10년차 선후배를 바꿔 소개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경우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이제 우리가 노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또 노인세대들이 스스로 자기 관리에 충실히 한다면 더욱 밝고 건강한 사회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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