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석지감((今昔之感)

2007-10-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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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국내외 국민과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6.15의 역사적인 한반도 남북 정상회담은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였다. 아웅산 참사와 대한항공 여객기 사건을 보았던 우리는 남한 대통령이 무사히 돌아올 것인가와 짧은 시간에 최선의 공통분모를 찾아 민족 전체를 어느 정도 흡족하게 할 것인가 등이 궁금했다.

분단 55년간 사상과 이념, 체제가 다르고 불신과 대결을 해오던 남북 정상이 대안하는 장면들과 합의 선언문 내용이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6월 13일 떠나는 김대중 대통령은 공항에서 국민에게 드리는 출국인사부터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주었는데 마지막 인사말이 “국민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요”였다. 역대 대통령의 해외 출국시 의례히 들을 수 있는 인삿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혹시나 되돌아 올 수 없는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는 심정이었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힌대로 힘들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용감하게 오셨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과거 유엔사무총장(함마슐드)이나 중국의 국방장관(임표)이 항공기 저격으로 공중산화했던 것을 기억하게 한 순간이었다.2차 정상회담을 위해 출발한 노무현대통령은 10월 2일 출발인사에서 여늬때와 같이 “잘 다녀오겠습니다”였다. 무섭고 섬뜩한 생각은 전임자의 왕래 경험으로 반감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은 김규식과 공동으로 남북회담을 제안한 김구 선생 일행이 연석회의 참석차 1948년 4월 19일 38선을 도보로 넘은 이후 60여년만에 무서운 지뢰밭이었던 군사분계선(MDL)을 최초로 넘는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1차회담은 불모지를 개간한 심정으로 거대한 화해의 물꼬를 트면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평화가, 한강과 대동강에서 번영의 물결이 넘치라는 5개항의 공동선언을 채택했으나 각 항 모두 개괄적이고 총론적이었다면 2차회담은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세부적인 각론 성격을 띄고 있음이 특징이다.이에 국내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는 계기가 되고 남북 경제협력 분야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3통(통신,통행,통관)문제를 비롯, 투자여건 개선, 기반시설 확충, 자원개발 추진, 해주지역 경제특구 건설, 남포·안변 조선협력단지 조성, 경의선 화물열차 운행 등 현안들이 합의됨에 따라 실질적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환영과 기대를 한다고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돈 오버도퍼 소장은 10.4 선언에 대해 오래동안 기다려온 성과물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낸 빅터 차(조지타운대 교수)로 균형 있고 실용적인 합의로 높게 평가하고 평화체제 추진도 6자회담 틀에서 전혀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에버스 리비아)과 도널드 그레그 의장(이사회)은 금번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 어떤 성명보다 포괄적인 내용으로 환영한다고 했으며 월스트릿 저널이나 뉴욕타임스도 1차 정상회담의 6.15 공동선언을 강화시킨 것으로 평가했다.남북 경협은 과거 베트남 파병과 중동 건설 특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약의 기회로 10~30년을 먹고 살 성장 동력이 북쪽에 있다는 것쯤은 일반 기업인이나 알만한 지식인은 다 아는 사
실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분단을 고착시키고 분기탱천하면서 상호주의만을 고집해야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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