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르프르와 국제정치

2007-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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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한미정치발전연구소장)

미얀마 민주화 시위대를 향한 군사정권의 유혈 진압이 초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검붉은 핏빛으로 물들이더니 어느새 수단의 다르프르 비극이 스산한 가을바람을 타고 국제사회를 더욱 냉랭하게 한다.

미얀마가 국내의 민주화 투쟁으로 오랜 몸살을 앓고 있다면 다르프르로 대변되는 수단의 비극은 국제사회의 해결을 요구하는 전방위적인 사건이다. 최악의 인권과 인종, 종교 갈등으로 폭발한 정치문제가 국제분쟁의 화약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토착민 마을에서의 잔혹한 인권유린과 집단방화, 대량학살 앞에서 21세기 국경을 초월한 인류평화의 이념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제도와 기구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은 미얀마 사태와 다르프르에서 벌어지는 야만성에 대해 안보리를 동원해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4년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이 다르프르에 파병되면서 평화협상이 시작됐지만 유엔의 평화유지군 파병은 2006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그나마 수단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파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집트의 역사학자 피타미는 1만 인종그룹이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아프리카를 유럽인들이 50개국으로 잔혹하게 통합하였다고 비판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아프리카가 그들이 세워놓은 국경과 체제에 갇혀 분열과 분쟁의 고통을 감당하는 역사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기득권 싸움으로 다르프르의 비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그러므로 수단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정치의 키워드는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는 수단을 통치하는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와 토착종교를 믿는 원주민들과의 종교를 바탕으로 한 인종갈등이다. 영국은 1956년까지 수단을 통치하면서 북부의 소수 아랍계를 이용해 남서부의 다수 아프리카계를 다스렸다. 독립 후에도 수단을 통치하기 위한 아랍계의 이주가 계속 늘자 남북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두 차례나 내전을 겪었다. 둘째는 이슬람 세력의 통치와 그들에 맞서는 토착민들간의 권력쟁탈을 위한 정치적 갈등이다. 중동의 이슬람 정권이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정권을 세운다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많은 분쟁을 야기시킨다. 토착민들에 대한 집단 살해로 이들 인구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슬람계의 정권 장악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셋째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미국의 역할과 중국의 이권 다툼이다.부시대통령은 다르프르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수단 국영기업들과 학살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들의 미국기업과 은행거래를 금지하는 경제제재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안은 석유 수입의 10%를 차지하고 유전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결국 국익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수단문제에 부시는 형식적인 제스추어만 보인 것이다.

만일 미국이 유엔의 실질적 행사력과 명분을 등에 업고 수단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면 미국의 위상은 달라질 수 있다. 중동지역의 패권 확보와 석유 확보라는 국익을 위해 일으킨 전쟁과 달리 민주주의의 참다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독선적인 외교정책으로 국제사회의 반목을 야기시킨 부시의 정책을 상쇄할 수 있고 진정 미국의 정신을 드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유형의 힘보다 무형의 숭고한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미국의 참모습을 보여줄 때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과 위상은 한층 성숙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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