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속화(民俗化)한 부패

2007-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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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스페인의 유명한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그의 명저 ‘아시아의 드라머’라는 책 가운데 ‘부패’에 관하여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그 저서에서 아시아지역의 후진적 경제구조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을 시도했었다. 무려 3권에 걸친 2,200여 페이지의 대저술이다. ‘부패의 장(章)’에서 뮈르달은 “민속화 한 부패”(Folklore of Corruption)라고 표현했다. 대통령도 연두기자회견에서 이 문구를 인용한 바 있었다.

부패는 가십이 되어 끊임없이 전달 유포된다.뮈르달은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인도 뉴델리의 한 고위 경찰간부가 친구인 작가에게서 이런 불평을 들었다. “교통법규를 제멋대로 어기는 택시 운전사들을 좀 엄하게 다스리지 않고 왜 그냥 두느냐?” 이에 대하여 경찰 간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교통순경이 운전사에게 주의를 주려고 하면 “저리 비켜!”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나서 운전사는 말하기를 “당신이 나보고 10루피를 달라고 했다고 사람들에게 떠들어댈거야!” 물론 그 경찰은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부인할 것이다. 그런데 운전사의 마지막 말이 기가 막힌다. “그걸 누가 믿어?”뮈르달은 부패를 마치 뻑뻑한 기계에다 비유한다. 정치나 경제라는 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거기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과거사를 돌이켜 볼 때 그것은 한 치
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예부터 권력을 쥔 자들은 그 권력을 악용하여 돈으로 관직을 매매하는 사례들이 적잖이 있었고 그 고질병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청렴결백한 사람은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게 되었으니 소위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으례히 부정을 일삼게 되어 민족 전체적으로 부패가 만연되는 현상이 되고 말았다. 요즘 그 좋은 본보기가 신정아 변양균 사건이라 하겠다.금전적 부패로 말하자면 역대 대통령들께서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돈 생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나라까지 송두리째 팔아 넘거지 않았던가?

오늘날의 부패를 유형별로 나눈다면 정치적 부패, 경제적 부패, 그리고 종교적 부패라 하겠다. 뮈르달은 그 부패를 치유하는 원초적 방법으로 정치 정화를 주장했다. 기업가들에 의한 정치헌금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인간의 도덕적인 단합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하급 샐러리맨들의 급여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의 복지시책에 있다고 본다. 구조적으로 복지시책이 확고하지 못할 것 같으면 이론상으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세운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다.

뮈르달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예를 든다. 미국과도 판이하게 이들 국가에서는 부패가 엄연하고 당연한 ‘터부’라는 것이다. 우선 격조 높은 도덕수준의 정치가들이 정직한 복지국가 건설에 매진하는 자세가 요체인 것이다. 이것이 말세라서 그런지 사회를 정화시키고 선도해야 할 입장에 있는 종교마저 정치적 부패에 못지 않은 상태에 처해있음을 어이하랴!

어느 교단의 수장을 선출하는 양상이라든가, 대형교회 담임목사는 큰 기업체 회장 행세를 하면서 교회 공금을 사유재산처럼 사용함이 정치계를 능가하고 있으며, 그러고도 강단에서는 가장 거룩한 법복으로 장식하고 근엄한 음성으로 사랑과 겸손을 설파하고 있으니 그 옛날에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했던 레닌의 말이 새삼 경종을 울리는 것만 같다.
만일 예수가 현대교회에 찾아온다면 그의 손에 채찍이 들려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만에 다시 세우리라!” 모든 종교는 가히 백성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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