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로·효도에 대한 일고

2007-10-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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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훼이스 크리스찬대학 교수)

정초나 추석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노인관련 단체나 대형 음식점 등에서 노년을 위로하기 위한 경로잔치를 하는데 2세들에게 효심을 일깨워 주고 노년들이 경로의 대접을 받는 이런 행사가 자주 있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사가 연중 한두번의 무슨 단체나 기업체의 전시용 효도행사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노인단체나 봉사기관에서는 심지어 소속 노인들을 앞세워 기업이나 업체 등을 방문케 하여 현금이나 상품을 찬조받아 행사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니 이야말로 엎드려 절 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리겠다.큼지막한 광고행사로만 경로나 효도의 의미가 굴절되지 않고 현실성 있게 효도하고 경로하는 방향이 어떤 것일까?


첫째 가족이나 사회의 어른으로 알고 대화하자. 노년들은 인생의 긴 여정을 살아온 사람으로 그들은 많은 체험과 지혜가 쌓여있는 인생의 보고이다. 경로의 뿌리는 뭐니뭐니 해도 가정 내 가족간의 애정에서 비롯되리라. 노인을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맘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면 정감이 흐르는 아기자기한 얘기며 값진 산 교훈들이 자연스레 흘러 나온다.
그 다음, 노년의 시간을 귀중히 여기자. 노인에게는 시간이 남아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다. 이곳 미국에서는 노인 전용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많다. 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서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우체국에서부터 은행, 병원, 아파트 관리실, 수퍼마켓, 약국 등을 다녀와야 하고 수도꼭지나 창문이 고장나면 수리공이 올 때까지 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 노인센터나 노인학교도 제대로 출석하기 어렵다.

홀로 사는 노인일수록 시간이 남지 않으니 그들의 시간을 귀중히 여기고 존중해 줘야 한다.또 한 가지는 노년들의 용돈을 잘 챙겨주도록 한다. 늙을수록 돈이 필요하다고 노년들이 흔히 푸념을 한다. 직장에서나 비즈니스에서 은퇴한 후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애가 탄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들에게 삶의 품위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

저소득층인 경우 뉴욕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인복지혜택(약 7가지)을 봉사기관을 통하거나 개인적으로 신청해서 충분히 복지혜택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노인에게도 잠재능력이 계속 살아나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인간이 사는 일생동안 능력의 10% 정도가 의식세계에서 활동하고 나머지 90%는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기나 중장년기 뿐 아니라 노년기에도 능력의 개발이 진행
되고 있다고 본다.

사실 미국에서는 고령인데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계속 일에 열중하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된다. 노년에 일을 훌륭하게 성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역마다 있는 노인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여 스스로의 시간을 즐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또 한 가지는 노년들의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노인들이 여론의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모든 이슈에 대해 방송국 대담자들과 토
론과 논쟁을 벌이고 자기 주장을 펴는 청취자들의 많은 수가 노년들이다. 이 노년층이 미국 여론의 향도를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개인적으로든 단체적으로든 노년들의 충고와 조언을 귀하게 받아들여 자기 계발과 지역사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일이 노년들이 그들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돕는 일이며 노년을 공경하는 일이기도 하다.다음, 자원봉사의 길을 터 준다. 노인들이 체력에 맞게 봉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은퇴한 많은 노인들이 봉사업무에 열심인 것을 볼 수 있는데 1년에 2번 있는 선거일에 투표장에 가보면 그곳 종사원 대부분이 은퇴한 노인 봉사자들이다.따라서 조그만 일이라도 남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덜어주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보람된 일을 해냄으로써 행복스러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황혼의 반려자 찾기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요즈음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황혼 동거란 말이 심심찮게 퍼지고 있다. 이젠 나이가 황혼기에 접어들어 결혼절차를 밟는 것도 번잡스러우니 맘이 맞는 상대를 만나면 남은 여생을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산다는 것이다. 나이든 분을 외롭게 살아가게 하는 것보다 가능하면 맘에 드는 이성을 찾는 일을 돕는 것이 효심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우리 고담에 ‘열 효자가 악처 하나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인류의 스승인 철인 소크라테스는 악처로부터 욕설을 듣고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한평생을 같이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교훈적이다.

지나온 인생의 장미빛 추억이나 파란만장했던 인생살이를 스스럼없이 얘기로 나누는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 사이라도 좋다. 노년들간의 중매나 이성 소개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하고도 귀한 일이 아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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