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꽃을 바라보는 사람

2007-10-16 (화)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큰길을 바쁘게 걸어가는 아침 저녁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고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걷는 것이 운동 중에는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말을 하지만 걷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다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급한 마음에서 걷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 흔한 차 한대 없거나 주머니에 버스 탈 돈마저 없어 길을 걷는 사람을 보고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운동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품고 있어야 움직이는 것이 운동이 되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7남매를 둔 우리 집의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많은 서울의 골목길을 걷고 또 걸으시었다. 그것은 시름이었지 운동이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에게는 꽃과 속살이 희디 흰 박으로 어머니의 얼굴이 새기어져 있다.


초가지붕 위에서 넝쿨을 뻗어가며 흰 꽃을 피우다가 껍데기는 바가지가 될 망정 속살마저도 희디 흰 둥근 박을 매다는 박꽃. 우리 7남매는 그 박 넝쿨에 매달린 일곱 개의 무거운 무게였지만 질긴 넝쿨 허리춤에 칠 남매를 달고서도 어머니는 무겁다 하지 않고 무수한 서울 길을 걸으시었다. 살기 위해서였다.같은 박과에 속하지만 노란 꽃을 피우는 박이면 호박이요, 흰 꽃을 피우면 그냥 박인데, 익어서 비록 바가지가 될 망정 망초꽃이 흩날리는 아련한 연민보다도 더한 연민을 향기로 흩날리는 박이다. 나의 어머니다.

꽃도 그러하지만 박의 속살은 더 희다. 그런데도 촌티가 나는 얼굴을 호박이나 박에다 비유해 순수한 박을 격하한다. 나는 그것이 지금도 싫다. 한참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박꽃은 낮에 피지 않는다. 낮에는 모가지조차 내밀지 않고 있다가 황혼녘이 되면 머리를 치켜
들고 나오다가 어스름을 신호 삼아 꽃봉오리를 슬쩍 내밀고 날이 저물면 활짝 핀다. 밤이 되어서야 얼굴을 펴고 잠시 쉬던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올해는 뒷뜰 텃밭에다 두 그루의 박을 심었다. 여름 내내 박처럼 커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지냈다. 달밤이면 박꽃은 더욱 아름답다.

달빛 아래에서만 만개하는 박꽃의 희디 흰 순백색의 흰 색깔은 색이 있어 아름답다는 개념을 송두리째 부정한다. 흰색 보다 아름다운 색깔은 없다. 흰색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머니의 마음이다. 순수하지 않으면 흰색이 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색깔이 섞이면 흰색이 되지 않는다. 지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천주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들의 어머니가 되신 내 어머니는 천연의 순수한 흰색이었고, 어머니가 지닌 마음이나 영혼도 천연의 순수한 흰색이었다.
아름다움은 인공으로 위조한 정형의 미가 아니라 천연의 순수함이기 때문에 결혼하는 신부를 그런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 드레스를 입혀 새로이 세상으로 출발시킨다. 내 어머니는 결혼하실 때에 입었던 흰 드레스처럼 하얗게 살다가 하얀 무명의 옷을 입고 저승으로 가셨으니 순백의 순수함이 무엇인가를 지금까지도 생각하게 해 주신다.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천연의 순수함을 저버리고 인공의 미를 찾아 나선다. 눈과 코가 예뻐야 미인이 된다는 선전에 홀려 많은 여자들이 성형외과를 찾는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천연의 한국적인 눈과 한국인 얼굴에 꼭 맞는 코의 모습을 두고 무엇 때문에 성형수술을 하려 합니까? 그냥 돌아가십시오!” 하는 의사가 있다면 나는 그런 의사를 존경하고 만나보고 싶어할 것이다.공장에서 생산된 똑같은 플라스틱 제품의 얼굴, 아무리 보아도 서로 다른 천연의 미가 아니라 국적 없는 외지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한 형태의 이상한 모조품들이니 “우리 어머니의 얼굴은 모조품”이었다는 기억을 아이들에게 남겨줄 사람들이다.

내 어머니의 얼굴이 성형외과에서 개조한 얼굴이었다면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떠올릴까? 마음을 고치려는 성형내과는 없다. 순백색 박꽃의 모조품이 아닌 순수함, 순백의 박꽃을 보면 눈물이 글썽이는 제목부터 찾고 싶은 심정,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인 걸 어찌하랴!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