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神)의 아들들

2007-10-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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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전 은행원)

한국정부가 종교적, 양심적 사유로 인한 병역 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종교계 일각에선 적극 환영하는 눈치이고 다른 한편에선 특정 종교 봐주기라 시큰둥해 하는 모양이다.

내 논에 물대기로 서로의 속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대명천지에 유례가 없는 절대독재 포악집단을 턱밑에 두고 종교나 양심을 구실로 국민 개병의 신성한 원칙을 흔드는 특정 종교계나 코-드에 맞는 정책이라 소, 닭 쳐다보듯 하는 노정부나 도낀 개낀이다.평민의 아들들은 병역면제자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비아냥과 부러움 섞어 호칭하면서 젊음의 격정과 분노를 가슴으로 죽인다. 예수는 신이건만 아들은 커녕 장가도 못 갔는데 이 땅에서는 수 천, 수 만의 아들들이 탄생할 판이니 속고 또 속고도 자꾸 찍어주는 까마귀 고기 애식가인 백성들 덕일레라.


정부나 신의 가족들은 면제가 아니고 대체복무라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최근 K시에서 3건의 부정사례가 적발됐는데 공익요원이 7개월씩이나 무단결근에 타 직장에 취업을 했고, 불법으로 게임장을 운영하다 적발됐는가 하면, 횡령과 사기혐의로 실형까지 받았다는 것이 모 일간지의 보도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 공무원들이 허위공문서 작성해 줘서 불구속 입건됐는가 하면 향응이나 뇌물수수까지 조사를 받는다니 기가 차다. 갈수록 태산인 것은 현재 인터넷 공간에는 100여개의 병역기피 사이트가 운영중이며 회원 수만도 30만명 이상 된다고 국방위 소속 맹형규 의원은 밝히고 있다.

이쯤 되면 대체근무라는 너울 쓴 애물단지 깨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킬 게 뻔하다. 누구는 신의 아들이라 후방에서 룰루랄라 호강하고 어느 X은 상것이라서 전방에 처박히게 된다면 배알 있는 젊은 사내로서 어금니 깨물지 않는 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분에 의해 군의 사기가 떨어지면 오합지졸일 뿐 이미 군대가 아니다.월남 패망을 반면교사이다. 불만이나 분노에 찬 아군의 혀가 적군의 총칼보다 더 무서운 패전의 실예는 바닷가의 조약돌 만큼 많다.공산주의자 맑스가 “성서는 악마도 이용한다”고 했는데 종교적 망상을 흉볼 지 모르겠지만 ‘부르투스 너 마저도!”라는 케이자르의 마지막 절규가 없었다면 로마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나라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방아쇠 당기는 검지를 자르고 이물질을 마신 뒤 가슴사진을 찍으며 평생 교회라면 독사뱀 보듯 하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미국의 ‘로웰’이 말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한국이 하루아침에 암흑의 나라로 빠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적이 쏘더라도 응사하지 말라”라든가 “백만명의 젊은이들이 군에서 썩는다”는 좌파의 국군통수권자들이 존재하는 한 총 멘 한국군은 모두가 행길포수일 뿐이다.

잘 되면 내 덕,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지만 십만 양병설을 주창한 이율곡이 그 아버지 뻘 되는 퇴계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써 주었다는 ‘지심귀재불기(持心貴在不欺)’ ‘입조당계희사(立朝當戒喜事)’의 12글자는 <맘 가짐에있어 귀한 것은 속이지 않는데 있고, 벼슬하여 조정에 나아가면 공을 세우려고 일 만들기를 좋아해선 안된다>라는 뜻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로 온 천지를 도배했던 김대중에게 앞의 6글자, 오기와 독선으로 밀어붙이는 노무현에게 뒤의 6글자, 두 사람의 집권 순서마저 틀리지 않게 쓴 글을 보면서 500년 뒤를 너무나 정확히 꿰뚫은 혜안에 놀랄 뿐이고 탓할 수 없는 현명한 조상을 갖고도 이렇게 가슴이 아린 이유를 헤아릴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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