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론과 학문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2007-10-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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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커네티컷주립대 명예교수)

지난달 9월 25일은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특별강연을 했기 때문에 뉴욕시의 교통은 대혼란이 생겼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란의 호메이니 대통령 사망 후 승계한 이란의 통치자로서 이스라엘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져야 하고 독일의 히틀러 통치시대에 발생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은 발생하지도 않은 것을 유대인이 거짓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뉴욕의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들은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히틀러 보다 더 악독한 아랍 통치자라고 악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컬럼비아대학교 총장 리 보링거 박사는 뉴욕의 모든 유대인과 컬럼비아대학의 유대인 교수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란 대통령을 초빙하여 특별 강연을 개최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컬럼비아대학과 같이 세계적인 명문대학은 언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매우 높이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와 같은 지도자에게도 스피치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뉴욕은 유대인이 미국에서는 제일 많이 살고 있는 도시다. 따라서 컬럼비아대학은 유대인 교수와 유대인 학생도 많이 있다. 유대인들은 과거 독일의 히틀러의 독재정권에서 추방당하고 대량학살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자식들은 변호사가 되게끔 교육시키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언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난하고 핍박당하는 소수민족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큰 업적으로 삼고 있다.

나는 50년 전 1957년 가을에 컬럼비아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인 1960년 9월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쿠바를 대표해 연설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컬럼비아대학의 그래이슨 커크 총장의 초청을 받아 특별강연을 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카스트로 대통령은 미국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독립국가를 선언한 후 미국이 다시는 침략을 못하게끔 소련과 동맹을 맺고 사회주의 국가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냉전의 절정시대였기 때문에 대학의 사회주의 서클이나 공산주의 학자들은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미의 공산주의 두목이 되고 반미주의자였던 카스트로 대통령을 컬럼비아대학의 특별강연에 초청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였기 때문이라고 컬럼비아대학 총장은 해명했다.카스트로 대통령은 녹색 군복(한국에서는 사병들이 입는 카키복이라고 했던가) 차림으로 컬럼
비아 캠퍼스에 나타났다. 그 당시는 현재와 달라서 데모하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컬럼비아 중앙도서관 버틀러 홀의 5층에서 캠퍼스 광장을 내려다 보며 키가 6척이 넘고 훤칠하게 잘 생긴 카스트로가 녹색 군복차림에 작업모를 쓰고 대학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대학강당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는 생생하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아무리 언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이라 해도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고 자본주의 제도를 타도하겠다는 30대 혁명가를 초빙하여 연설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언론은 카스트로 대통령의 언론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초빙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나 그와 같은 독재자의 스피치를 듣지 않겠다는 자유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과 학문의 자유는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후 200여년 동안 보장되어 왔으며 또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존시켜 온 근본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언론과 학문의 자유 때문에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즉 한 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따. 뉴욕에서 내가 보고 느낀 체험이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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