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아름다운 유산

2007-10-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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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1980년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스물일곱 해째 ‘코리안 퍼레이드’가 지난 주말 맨하탄에서 어느 해 보다도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졌다.

뉴욕에서는 일 년에 50여개의 블록 파티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주말에 벌어진다. 뉴욕은 다민족이 사는 국제도시이기 때문에 소수민족들은 연례행사로 이 곳 도심 한 복판에서 퍼레이드나 축제를 자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살려 각양각색의 형태로 펼친다. 뉴욕에서 펼쳐지는 큰 규모의 퍼레이드나 축제를 꼽는다면 매년 봄 성 패트릭스 데이에 아이리쉬들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여는 축제, 푸에르토리칸의 파크 애브뉴 퍼레이드, 48가에서 열리는 브라질 페스티발, 빌리지에서 벌어지는 독일인들의 맥주 축제, 할로윈 가장행렬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뉴욕한인회가 주최하고 뉴욕한국일보가 주관해서 매년 개최하는 코리안 퍼레이드다. 이 축제는 이제 명실 공히 앞서 거론한 행사들과 함께 세계의 중심도시인 뉴욕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계절적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 중에서도 맨하탄의 중심가인 브로드웨이 한복판을 행진하는 퍼레이드는 코리안 퍼레이드가 유일하다. 맨하탄 42가 타임스퀘어에서 23스트릿까지 19 블럭의 차량통행을 막고 두 세 시간을 행진하는 것을 허가하는 것은 이제 뉴욕시에서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뉴욕시 경찰 기마대, 뉴욕시경 브라스 밴드가 선도하는 행렬은 언제나 봐도 마음 든든하고 퍽이나 이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올해는 특별히 본국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세종대왕 어가행렬’과 ‘육군 취타대 행진’이 퍼레이드에 참가해 이 행사를 더욱 빛내면서 한국문화의 진수와 위용을 드러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담은 행렬이 세계의 수도인 뉴욕의 한복판을 누비자 이를 보는 한인들은 하나같이 감격스러워 했다.

5천년의 역사, 오래된 전통이라고 물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북방민족 특유의 음주벽, 양반사회의 유산인 남존여비 사상이나 축첩제도, 관리들의 월권과 전횡풍조 등은 마땅히 버려야 할 유산이다. 한 세기 전 개화기에 발전한 서구문화를 접하고, 우리 사회에는 일제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우리 전통의 것을 비하하고 우리 문화를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었다.

망국과 가난의 열등감이 민족적 수치심으로 변해서 우리 자신이 우리의 것을 멸시하는 풍조가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기술문명에서 뒤진 동양권의 문화전체가 서구문명에 비해 열등하게 취급되었다. ‘오리엔탈(oriental)’ 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동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열등한’ ‘우스꽝스러운’ 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어휘로 쓰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러한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서구의 지식인들은 점차 동양문화의 깊이와 가치를 인식하고 지극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퍼레이드에서도 시연된 세종대왕의 어가행렬을 보는 연도의 수많은 미국인들은 너도 나도 ‘부라보’를 연발하며 갈채를 보냈다. 이 행진은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이미 500여 년 전에 이루어진 절대왕조의 통치체계를 확립한 왕의 행진을 통해 당시의 번영과 찬란한 문화를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모관대를 한 문무 양반들의 전통복장도 실제로 연출하니 너무나 아름다웠고 한국전통음악의 위풍당당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보여준 육군 취타대의 복식도 빼어나게 아름다
웠다.

이를 보고 누가 우리 문화를 초라하다 보겠는가? 한때 우리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가, 깊이 반성하게 된다.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향 때문일까? 우리 민족 전통의 문화들이 새삼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얼과 숨결이 담겨있는 자랑스런 문화,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2세, 3세들이 계속 전수받아 그들이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후예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유산으로 잘 갈고 닦아 확실하게 넘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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