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끝이 중요합니다

2007-10-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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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뉴욕 메츠 팬은 실망을 넘어 운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시즌 초부터 리그 1위를 달려 팬을 열광시키고 월드시리즈까지 이를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던 메츠가 시즌 마지막 날에 패하여 탈락하고 만 것이다. 미 프로야구 사상 40년만에 처음 보는 재앙이라고 한다. 화려한 출발도 끝이 어두우면 시즌 전체를 구긴다.

처음과 중반이 성공적이라도 결승점에서 휘청거리면 역시 실패로 간주된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시작할 때 스피드를 내서 앞장 선 것이 성공이 아니다. 어떻게 끝냈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인생을 시작했는지가 문제 되지 않는다.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아왔는지도 문제되지 않는다. 정말 문제되는 것은 마무리 단계이다.고 재클린 오나시스는 맨하탄에서 살다가 64세에 암으로 별세하였다. 각 신문이 그녀의 특집을 만들었는데 한결같은 논조는 ‘온 국민의 사랑받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부호 오나시스와의 재혼 때도 미국인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뉴욕생활 중에도 끝까지 이웃의 칭찬과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조용함과 겸손을 유지하고 따뜻함과 품위를 보존하였기 때문이다. 남에게, 그것도 공개적으로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뜻함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것은 갑작스런 선심으로 되지 않고 평소에 풍기는 겸손이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자비한 마음은 영혼의 문을 열고 강퍅한 마음은 이웃의 문을 닫는다. 대개 똑똑하다는 사람이 강퍅해지기 쉬운데 재클린은 젊어서부터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잘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사랑 받는다. 정말 아름다운 끝맺음이 아닌가!

제주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자기 반 학생의 작품이라면서 동시 한 편을 나에게 보내준 일이 있었다. 이것을 보관은 못했지만 시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다. 학교 운동회의 마지막 순서로서 동네 사람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 경주가 있었다. 모두가 젊은 사람들인데 그 중 백발 노인 한 분이 끼어 있었다. 시를 쓴 아이는 매우 궁금하였다. 저런 노인이 과연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교문 밖으로 달려나간 마라톤 선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노인 선수가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마지막 선수가 운동장에 들어선 뒤에도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운동회는 끝났다. 시상식도 끝났다. 모두가 학교를 떠났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집으로 바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운동장을 떠날 수 없었다. 노인이 늦게라도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과 혹시 도중에 쓰러지지나 않았나 하는 걱정도 있어 집에 가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교문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흰 머리띠와 흰 운동복, 바로 백발 노인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절룩거리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러나 주저앉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다. 규칙대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결승점까지 갔다.
노인의 모습을 동시로 엮은 아이의 감동과 그 시를 읽은 나의 감동과는 연령상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끝까지 경주를 마무리 짓는 훌륭한 모습에 그 아이도 감동을 받아 시를 썼고 시를 보내주신 선생님도 나도 같은 감동에 젖은 것이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한 것은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그 전날인 11일에도 선원들은 폭동에 가까운 데모를 벌였다. 그러나 이튿날 날이 밝았을 때 수평선에 육지가 보였다. 지금의 바하마 열도이다. 콜럼버스의 항해일지는 날마다 같은 말로 맺어져 있다. “우리는
오늘도 서쪽으로 항해하였다” 그가 4차 항해를 완결한 1502년 스페인 국왕 페르도난드와 이사벨라 왕비에게 보낸 보고서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신천지를 발견한 것은 나의 수학이 힘이나 항해술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신념이 굳은 희망으로, 확고한 희망이 불굴의 추진력으로 이어진다. 희망을 가진 자는 참을 수 있고 희망이 없는 자는 조급하고 신경질을 부린다. 신념이 없는 자는 인내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슬기가 없다.

나는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일곱 가지를 꼽는다. 첫째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일을 걱정하는 것, 둘째 사소한 일을 두고 끝까지 고집하는 것, 셋째 실수하거나 실패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 넷째 생각 없이 뱉는 말, 다섯째 남에게 나와 똑같이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것, 여섯째 실수를 알면서 반복하는 것, 그리고 일곱째로 가장 큰 인생의 실수는 끝까지 시도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팀은 1년 내내 2위에 머물다가 최후의 순간 상황을 역전시켰다. 사람은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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