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은 세상일을 모두 알 수 있는가?

2007-10-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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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독서와 사색의 계절, 가을이 깊어간다. 생업의 긴장에서 벗어난 은퇴자들에게 가을은 한가한 상념 속에 깊이 잠겨보는 계절이기도 하다.세상에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들이 너무나도 많다. 비행접시의 정체, 세포와 생명의 비밀에 관한 의문,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사람의 두뇌 기능 등에서부터 ‘우주의 끝’ ‘시간의 시작’과 같은 과학과 철학에서 아직 풀지 못한 의문은 끝이 없다.

중국의 철인 ‘순자’는 “아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고 알려지는 것은 물건의 이치이다”라고 했고 서양의 ‘포이엘 바하’도 “자연은 자기를 숨기지 않는 큰 책, 우리는 그것을 읽음으로서 인식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사람의 인식능력을 내다 보았다.그런가 하면 중국 선진(先秦)시대 ‘장주(BC 369~BC286)’라는 사람은 유명한 ‘나비의 꿈’이란 우화에서 하루는 그가 나비가 된 꿈을 꿨는데 꿈 속에서 자신이 장주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깨어난 다음에 자신이 나비가 아니라 장주임을 알았다면서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꿨는지, 나비가 꾼 꿈이 장주인지 알 수 없다”고 황당한 소리를 하였다.


이런 회의주의 사상이 근대에 와서 불가지론이란 철학유파로 발전하였는데 그 대표 인물이 유명한 독일 철학자 ‘칸트’이다. 그는 사람의 인식은 감각기능을 통해 사물의 본질(사물 그 자체, Ding an sich)에 도달코자 하는데 그 감각능력은 담장에 갇혀있듯 한계가 있어 현상에 머물러 있을 뿐 결코 본질에는 도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은 영원히 피안의 세계에 있는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고 인간의 인식능력을 부정하였다.장주도 “생명은 유한하고 인식 대상은 무한한데 유한한 인간이 어찌 무한한 인식을 추구하는가? 모두 헛일이다”고 탄식하였다. 불가지론자들은 현상과 본질 사이에 깊은 골을 파놓고 양자를 분리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현상에 도달하면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사유에 의해 현상을 꿰뚫고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심오한 철학논쟁을 거쳐 이미 논증되었다. 감각의 한계를 인식의 한계로 과장하고 현상과 본질의 연관성을 분리시킨 것이 불가지론자들의 오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한 개인의 인식, 또는 한 시대의 인식이 비록 유한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르고 또 집체적 연구의 성과로, 내용은 세련되고 심화되어 더 깊고 정확하게 세계를 반영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사람들은 언제나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발판으로 하여 미지의 세계로 인식의 범위를 넓혀 나아간다. 이러한 부단한 인식의 확대는 유한한 인식으로부터 무한한 인식에로의 끝없는 진군이다.

200여년 전, 과학은 뉴톤의 인력공식을 운용하여 지구와 다른 별들간의 거리를 밝혀내 우주 비행을 실현하고 있고, 다른 천체들에서도 지구와 똑같은 역학법칙이 적용되며 그곳은 신비한 신령세계가 아니라 역시 지구와 똑같은 물질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물질구조에 대한 인간의 인식역사를 예로 들어보자.고대인들은 만물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되었을 것이란 소박한 추측을 내놓았다. 19세기 들어 과학은 실험을 거쳐 원자의 존재를 실증하였다.20세기 들어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었고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최근년엔 소립자론에서 스트라톤 모형과 쿼크에 관한 가설을 내놓으며 더 깊은 물질구조가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의 인식능력은 갈수록 깊고 넓어지며 지금 풀지 못한 의문도 결국에는 과학이 그 해답을 줄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만일 우리의 선대들이 회의론에 빠져 불가지론을 믿고 객관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류의 인식발전은 옛날 어느 싯점에서 정지되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미신에 빠져 무식하고 우매해져 있을 것이며, 오늘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 찬란한 물질문명은 이룩될 수 없었을 것이다.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세계는 인식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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