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경 체류 100시간

2007-05-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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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주인공 생김새는 물론 활약까지도 뻥튀기로 확대한 오락소설 ‘삼국지’를 읽는 재미에 수업시간을 등한시한 소년시절이 있었다. 철들어 찾은 본고장 중원에서 그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모 주석이 중심에 누워있는 그 때의 대지는 사막화 되어가고 있었다.

조선족 안내원은 일행을 북경 최대의 호텔로 안내하며 미국 관광객 여권을 훔치는 절도단이 있으니 카피해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귓속말을 건넨다. 용처럼 있지도 않는 조각동물이 세워진 호텔의 홀은 중국적 거대함을 보여주어 관광객을 압도했다.중국 정부가 관장하는 관광사업은 싼값에 중국에 와서 여행하게 하고 선조들이 남겨놓은 역사유물을 구경시킨 후 국영상점으로 안내해 일정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가게에 머물게 한 후 한약
이나 보석 등 국가 전매 상품을 사게 하는 여정으로 짜여 있다.


중국 문명에 매력을 느끼는 유럽인이나 일본인보다는 중국 상품에 관심있는 서울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술주정꾼 명황제 지하 묘를 관광한 후 가는 곳이 귀금속점인데 그곳에 주차된 27대의 버스 중 19대에는 한국관광객 푯말이 붙어 있었다.상점에 들어서기 전 사던 말던 진품 증명서를 나누어 준다. 은줄로 연결됐다는 옥돌 팔찌와 목걸이 세트를 사들고 아내가 좋아했던 것도 한 때 뿐으로 은으로 도금한 줄이 인조 돌이었음을 확인한 것은 귀국 후였다. 진주 목걸이는 진품이나 귀국 후 질긴 새로운 줄로 갈아끼워야 했다.국영 찻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인은 상품과 차도 설명에 잘 훈련된 안내원이었고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중국 차는 만병통치 음료수였다. 하긴 영국인들이 은화를 주고 사서 마신 차로 인해 본국에서 은화가 자취를 감추자 되찾기 위해 일으킨 ‘아편전쟁’의 승리의 힘은 앵글로 색슨이 마셔댄 차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북경한의대에서 한의사에 대한 진맥은 필자는 생전 처음 갖는 경험이었다. 진맥 결과 고혈압 환자가 되어져 평안한 마음으로 병원문을 나서기 위해서는 적지않은 액수의 한약을 구입해야 했다.관광이나 샤핑 후 식탁에 놓여진 요리는 무엇을 먹는지 알지 못하고 먹는 음식이 많았으나 김치가 준비되어 있어 기름기 맛을 덜어주었다.세계 최대 천안문 광장을 지나 자금성에 들어선 후 궁의 마지막 문을 나서기까지 걸어 2시간 걸리는 관광은 북경의 하일라이트였다.

장개석 군대가 대만으로 가져가 궁내에서 볼 수 있는 보물은 없으나 웅대함은 남아 있다. 관광객들이야 스쳐 지나면 되지만 조선에서 온 조공사들은 근엄한 절차와 행보로 황제 앞에 도달했을 때는 녹초가 되어 꿇어 엎드릴 수밖에 없었을 터이고, 쳐다볼 수도 없었으니 사대할 수 밖에.

대원군을 놀라게 한 ‘만리장성’은 길이와 연대가 역사책의 기술과 다름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한국이 이로 인해 보호받은 적이 없고 왕조의 위협은 오히려 남쪽으로부터 오는 때가 많았다.마지막 중국 황제는 갔으나 평복 입은 새 붉은 황제는 돈 벌 기회가 있으면 결코 놓치지 않는 백성을 통치하며 그들이 파헤치는 뿌연 먼지를 뚫고 황제의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 필자가 탄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북경 하늘을 치솟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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