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나라의 아름다운 사람들

2007-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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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미안해,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너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학교의 수업이 다시 시작하기 전, 버지니아공대의 학생들이 32명이나 총격으로 희생시킨 조승희의 이름 앞에서 눈물을 뿌리며 조승희의 영혼을 미움과 원망 대신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그
따뜻한 말 앞에서 나는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어디에서 그런 마음이 일까? 범인을 같은 희생자로 보면서 같이 울어주는 저 사람들. 누구로부터 그런 용서의 방법과 자비의 심성을 배웠을까? 아무리 연습을 해도 될 것 같지 않은 그 사람들의 얼굴을 TV로 보면서 그들 앞에 무
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인생살이는 마라톤과 같다고 했다. 어느 마라톤 코스는 평지가 많은 비교적 쉬운 거리이고, 어느 마라톤 코스는 자갈길에 언덕이 많은 험난한 코스다. 험난하다고 해서 마라톤의 거리를 줄여주지 않는다. 마라톤 경주에 참가한 사람이 모두 완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출발 신호가 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완주할 각오가 가슴속에 끓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일등, 아니 적어도 등수에는 들 수 있을거라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만 보고 뛰었고, 지금도 앞만 보고 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뛰기에는 숨이 너무 차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생기고, 뛰고는 싶은데 다리에 쥐가 나서 주저앉는 사람도 생긴다. 천천히 뛰는 사람이나 빨리 뛰는 사람, 모두 흘리는 땀에 온 몸이 젖는다.


이민의 마라톤은 코스가 험하다. 중간에 낙오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적응하기 어려운 사회환경, 문화적 환경으로 인하여 뛰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머리를 푹 숙이고 지하철 간이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 따돌림을 받다가 등뒤로 책가방을 돌려 매고, 장애물같이 우뚝 솟은 먼 산이나 먼 산 산정에 걸터앉은 더 먼 하늘 끝을 바라보며 힘없이 걷는 학생, 양파나 실파 다듬기를 좋아한다며 파를 다듬으며 아들이나 며느리 앞에서 마음놓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쓰다듬는 할머니. 일 나간 아버지나 어머니의 정확한 채바퀴 퇴근시간을 아는 어린아이가 오염되어 가는 심성을 감추고 시간에 맞추어 집에 들어와
공부를 하는 척 부모를 속이며 부모 몰래 부모와 점점 멀어지는 아이들. 땀을 흘리며 다가가 상대의 마음속 고민이나 추운 곳을 들추어 보면서 한숨도 같이 쉬며 손도 잡아주고, 어깨가 쑤시는 타향살이에 같이 손을 잡고 울기도 하고, 거칠어지는 손등 덕에 벌리는 작은 돈에 웃기도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희망 그 자체라는 희망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행복한 말도 건네 본다.

미국은 결코 쉬운 코스의 나라가 아니다. 땀이 더 많이 나는 험난한 마라톤 코스다. 마라톤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주다. 미국의 모든 학생들이 말하듯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한 사람의 문제일 뿐, 인종이나 국가간의 문제가 아니다!” 명확한 이들의 대답 앞에서도 전전긍긍하던 한국인의 모습들을 보고 명의의 오진을 보는 듯 하다.

매 맞은 아픔에서 오는 눈물은 싸늘하지만 사랑으로 쓰다듬어주는 역성에는 눈물이 뜨겁다. 친구를 잃었어도, 자녀를 잃었어도 이해를 불러 “미안해,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하면서 가해자를 애석해하는 미국인의 저 심성,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배워왔을까? 그러니 참혹한 사건이라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계속 전진한다. 넘어지더라도 무릎에 한 줌의 흙 자리를 툭툭 털고 계속 전진한다.

우리만 힘든 미국의 생활이 아니다. 네거리에서 파아란 신호등을 기다리는 본토백이 백인의 구두 뒤축을 바라본다. 많이 닳았다. 우리의 신발 뒤축만 닳은 것이 아니다. 생활 앞에서 쉬운 나라는 없다. 그들도 힘든 코스에서 뛰고 우리도 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생활의 지속이지만 우
리에게는 희망의 지속이다.중간에서 뛰기를 포기한 조승희, “미안하다. 뒤처져서 남들보다 두배 세배 힘들게 뛰는 너는 보지 않고, 앞서 가는 사람만 보고 환호성을 외쳐대는 우리 부모, 우리 사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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