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산다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2007-04-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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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하루 세 끼 밥(음식)만 먹으면 살아가는데, 그렇지가 않다. 산다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먹기 위해 사느냐,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느냐? 답은 명확하다.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산다. 둘 다 정답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법칙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몸이 영양 보충되어
신진대사가 되어야 살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하루 두 끼만 먹고 살아왔다. 미국에 들어와서 생활패턴이 바뀐 탓이다. 약 25년 이상은 되었을 것 같다. 하루 세 끼 중 한 끼를 굶고 두 끼만 먹고 살아왔으니 식량난에 조금은 보탬이 되었을까. 아니면 제 끼니도 못 찾아 먹는 바보 측에 들어갈까. 어찌되었든 하루에
두 끼만 먹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 두 끼를 먹고 살아가는 건 나만 아니다. 아내와 두 딸들도 마찬가지다. 아예 조반, 즉 아침밥이
란 개념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한국에서 살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 따끈따끈하게 차려진 밥에 국을 말아 먹고 출근하였다. 그런데 이곳, 즉 미국에 들어온 지 27년이 되어 가는데 따끈하게 차려진 아침밥은 멀리 사라진지 오래다.


“아침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 먹고 출근하거나 학교 가기 바쁘지요. 미국생활이라는 게 어디 한가하게 조반 차려먹고 느긋하게 집을 나서게 되나요!” 이민생활의 단면이 이렇게도 이야기 된다. 그런데 아침은 건강식이라 하여 반드시 차려먹고 나서는 한
인들도 많다. 따끈하게 밥과 국을 먹고 온 식구가 출근하는 그런 집도 있음에야. 사람 살아가는 건 밥 먹고 일하고 자고 또 밥 먹고 일하고 자는 그 순환의 연속 같은데, 그 연속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가보다. 고차원의 생활을 해야 한단다. 좋은 소리들이다. 물론 사람이란 다른 동물과 달라 영화도 보아야 하고 책도 보아야 하며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
나?”란 질문도 스스로 해 보아야 한다. 문화생활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저 돼지처럼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하는 것은 동물이지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한가하게 누군가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서는 먹을 것을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게 세상이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노력하지 않아도, 배불리 살아가는 사람
이라면 몰라도. 눈치 보며 피땀 흘려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이 세상이다. 생존경쟁이란 말. 그 자체는 곧 전쟁이다. 특히 미국에 와서 사는 사람들 쳐놓고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먹고사는 사람은 없다. 아예, 정부로부터 식량 표를 타먹고 사는 사람들 외에는. 그래서인지 정말 없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 아이 하나에 얼마씩 정부보조가 나오기 때문이다. 예로, 아이 하나에 월 400달러라면 다섯이면 2,000달러다.

상당한 액수다. 가만히 놀아도 아이들 덕에 2,000달러가 나온다면 꽤 괜찮은 수입이다. 한인들이야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많이 없겠지만 그래도 혹은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이렇게 살던 저렇게 살던, 살아가는 것 그 자체는 전쟁이다. 적자생존이란 말도 있듯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
군가를 누르고 올라서야만 하는 게 세상의 냉정한 생존법칙이다.
살아남기 위해 카멜레온은 무수하게 변한다. 상황에 대처하는 긍정적 처세를 카멜레온에게서 배워야 한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벌이 아닌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누구에게 돈을 빌리려 해보라. 선뜻 줄 사람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다. 그 사람 어려울 때 5만 달러를 이
자 없이 두말 않고 친구가 빌려주어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 사연이다. 예외다.

세상에 한 번 나와 사는 이상, 밥만 축내는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좋은 사람이란 남을 먼저 도와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정확히 하여 정당하게 돈을 벌어 가정을 제대로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가운데 이웃의 어려움에 십시일반 동참하는 사람이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마침내 성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하루 세 끼 밥(음식)만 먹어도 살아가지만 먹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사람은 돼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니다.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굶어 죽을 정도로 돈과 수입이 없다면 정부가 책임 져주는 나라다.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카멜레온처럼 살아야 살아남지만, 사람이란 자존심만은 지키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루 두 끼를 먹던 세 끼를 먹던 그건 자유다. 먹으면 살게 된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것은 사람아래, 혹은 사람위에 사람을 놓고 자신을 보는 부정적 비교의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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