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의 정체성

2007-04-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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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성(자유기고가)

오늘 아침, 심리학자를 아버지로 둔 Ryan Fitzgerald라는 한 청년이 대화 부족으로 외로움을 겪고있는 사람들을 위해 ‘Dial-A-Friend’-There for You On Youtube란 전화라인을 공개했다.

본인도 깜짝 놀랐지만 전화국도 비상이 걸릴 정도로 미국 본토는 물론 세계 각처에서 쇄도하는 전화통 수가 5,000통을 넘고 있다고 한다.
한달 600분의 사용 할당분을 초과해 부과되는 전화료만도 월 수만 달러에 달할거라고 하며 아침 ‘토크 쇼’에 나온 것을 보고 느낀 바이지만 젊은층들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대화 상대가 없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라고 소개하면서 직장도 없는 젊은이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전화비용을 특별히 탕감해 줄 방도를 전화국에서 연구 중에 있다고 한다.


조승희군의 사건이 한국출생 이민자의 자녀로 매도되고 치부되어야 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LA타임스의 기사 대로 조군은 미국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미국 청년이지 어찌 한국인 출신에다가 붙여 거론을 해야 될 사안은 아님이 분명한데 우리는 너무도 짧은 생각과 얄팍한 식견으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촐랑대고 경망한 처신들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과오를 범하고 또 오류를 계속 하고 있음에 절로 나오는 한숨을 거둘 수가 없다.

실제는 젊은이들을 이민 1세대로 칭함이 마땅한데 우리가 소위 말하는 2세들의 뿌리의식과 정체성 문제는 아예 생각조차 못했던 ‘이슈’였고 어린 자녀들의 언어장애와 급격히 달라진 문화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못했던 걸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유·무식함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 충실하는 데만도 여력이 없다 보니 그 와중에 우리 어린 자녀들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아무도 모르게 정신 이상 증세가 싹트기 시작했다.

한 어린이의 가장 중요한 인격 형성 시기에 암처럼 무서운 세포가 한껏 도사리고 자라고 있다는 걸 예견한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만 정체성과 뿌리의식을 찾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가 어떻고 찬란한 역사가 어쩌고 떠들며 뇌이곤 했지만 실제 자녀들의 인성교육과 정체성 확립에 필요한 교육적 차원에서의 교육 여건이나 제도적인 교육환경 조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거리가 먼 어른들의 의식과 인식 부족부터가 한심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것이 우리 이민역
사의 현실이요, 참담한 현장이 아니었던가.

큰 집과 좋은 차, 일류학교와 병적으로 명품만 찾고 집착하는 어른들의 사고방식부터가 자녀들의 문제의 싹의 시작이요, 끝이다. 잡기에만 몰두하고 아예 책과 문화활동 분야와는 거리가 먼 호사방탕한 향락주의 일상이 생활의 전부인 부모들 슬하에서 자라온 자녀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배우고, 그래서 어떻게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개똥만도 못한 자존심으로 거드름은 피울 줄 알지만 알멩이는 없으면서 허풍을 떨며 정체성이네, 정서입네 하며 소리만 요란했다. 이민사 100년은 고사하고 1960년대 후반부터만 계산한다 하더라도 지난 40여년간 과연 우리 이민세대들은 우리의 자녀인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비롯해서 정체성 인식 제고와 그 확립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모든 한인회에서 지난 40여년간 실제 무엇을 어떻게 계획하고 이를 실천했는가를 문책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과연 어느 사회단체가 어느 봉사기관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했는지 엄숙히 자성할 때가 도래한 것 같다.늦었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작했어야 될 시점이 지금이라는 걸 인식하고 과감히 첫 발을 내딛고 나아가야 할 때임을 알아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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