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큰 나라의 큰 시각

2007-04-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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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거듭 거듭 용서를 빕니다’ 충격적인 뉴스를 접한 첫번째 심경이었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뉴스에 대한 두번째 반응은 ‘조용히 촛불을 밝힙니다’ 였었다.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며, 그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인 것이다. 예상치 못하던 사태의 진전은 이렇게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다가 또다른 현재의 조용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마치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꿈과 성품이 있는 것처럼, 제각기 다른 국가의 이상과 정책이 있다. 이번 사태를 대처하는 미국의 마음과 태도는 이런 점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국가의 철학은 그가 행하는 정책 수행 방향과 나라 안 사람들의 마음이 가는 방향에 나타난다.미국은 이번 사태의 초점을 무엇으로 보고 있나. 이들은 처음부터 결코 어느 민족과 연관을 지을 생각이 없었다.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의 범죄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한국이 조문사절을 보내겠다는 제의를 다른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거절하였다.


몇몇 행정가들은 미국인 중에 혹시라도 감정에 치우쳐 한국인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하겠다고 성명하였다. 이들이 본 문제의 본질은 총기규제법안에 대한 재검토이다. 바른 궤도에 오른 시각으로 본다.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어떤 마음을 보여주었나. 한 마디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일 미안하다’였다. 이런 마음은 희생자 32명의 추모석에 승희 것을 포함해 33개를 늘어놓았다. 그 앞엔 학생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 성조기, 교기, 애도의 편지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들어온 뉴스에 따르면 이 추모석이 이유를 모르게 있다 없다 한다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겠는
가. 그에 대한 미안한 느낌은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것인데…. 또한 미국과 한국학생이 한인 마을의 업소들을 방문하여 위로하는 모습도 방영되었다.

미국인들은 사건의 시간적 전환점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외친다. 지금은 시련을 극복하고 ‘렛츠 고 호키!(Lets Go Hokie)’라고 외치고 있다. ‘호키’는 버지니아공대 응원구호라고 한다. 하여튼 언제까지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전진하고 싶어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으니
까.이번 사건의 총결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미국이 할 일과 한인들이 할 일이 따로 있다.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강력한 총기상들의 로비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도 총기 판매시 정신장애자를 구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바란다. 또한 학교내 안전 유지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이런 일이야 말로 행정기관에서 강구할 일이다.

그렇다면 한인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이민생활은 어른들만 힘든 일이 아니고 온 가족이 힘들다는 점을 그동안 잊고 있지 않았는가. 1.5세나 2세들이 학교 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가족의 대화로 풀어 주었는가. 부모들의 교육관은 올바른 것이었나.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일, 좋은 직
업을 가지는 일을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은 자녀들의 행복감과 일치하는가. 가정교육의 문제점이 꼬리를 물고 의문으로 나타난다. 이런 문제들은 한인사회의 중점적인 반성 사항들이다. 우리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따지고 보면 승희의 탈선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그에게 미안한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승희도 틀림없는 희생자 중의 하나이다.

왜 미국인들은 누구의 책임이라고 떠들지 않는가. 이 때쯤 되면 총장·경찰관·안전요원들·기숙사 사감·한 방을 쓰던 친구·총기상 등 누구를 파면해야 하고 누구를 벌 주어야 한다고 떠들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일에 대한 것은 조용하고 모두가 사건의 동기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종류의 사건을 예방하려는 연구 과정이다. 사건의 수습 과정을 침착하게 따라가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을 큰 나라로 본다. 큰 마음을 가진 나라로 본다. 이에 비교하면 지금까지 한국내에서 일어난 일처리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사물을 보는 눈이 본질을 바르게 보며, 넉넉한 마음으로 침착하게 일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큰 나라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도 작아지는 마음은 한 민족의 집단적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승희는 우리와 함께 다민족이 모여 하나를 이룬 미국인이었음을 다짐하는 요즈음이다. 온 마음이 큰 나라 사람이 되기도 노력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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